지진 때 땅이 물처럼 흐르는 액상화 현상
단단해 보이던 모래 땅이 지진의 흔들림 속에서 갑자기 물처럼 변해 건물이 기울고 하수관이 솟아오른다. 물에 젖은 모래가 힘을 잃는 원리와 액상화에 대비하는 방법을 살펴본다.
편집부 · 2026년 11월 2일 · 읽는 데 4분
액상화는 물에 젖은 느슨한 모래 땅이 지진으로 흔들릴 때, 모래 알갱이 사이의 물이 압력을 받아 알갱이끼리 버티던 힘이 사라지면서 땅이 잠시 액체처럼 행동하는 현상이다. 액상화가 일어나면 땅 위의 건물이 기울거나 가라앉고, 땅속의 하수관과 맨홀은 오히려 위로 떠오른다. 흔들림이 멈추면 땅은 다시 단단해지지만, 그사이에 생긴 피해는 되돌릴 수 없다.
모래는 알갱이가 서로 받쳐서 버틴다
모래 땅이 무거운 건물을 떠받칠 수 있는 것은 모래 알갱이들이 서로 맞닿아 힘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알갱이 사이의 빈틈에 물이 차 있어도, 알갱이끼리 맞닿은 지점에서 마찰이 생겨 땅은 단단하게 버틴다. 땅이 받는 무게 가운데 알갱이들이 직접 나누어 지는 몫을 유효 응력이라고 부른다. 땅의 단단함은 이 유효 응력에 달려 있다.
바닷가에서 젖은 모래를 발로 빠르게 구르면 발밑이 갑자기 물렁해지고 물이 배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액상화를 아주 작은 규모로 겪는 셈이다. 발이 누르는 순간 모래 사이의 물이 미처 빠져나가지 못해 압력이 높아지고, 알갱이 사이의 맞물림이 풀린다.
흔들림이 물의 압력을 높인다
지진이 오면 땅은 짧은 시간 동안 앞뒤로 여러 번 흔들린다. 느슨하게 쌓여 있던 모래 알갱이들은 흔들릴 때마다 조금씩 더 촘촘하게 자리를 잡으려 한다. 알갱이가 빈틈을 메우려면 그 자리에 있던 물이 빠져나가야 하는데, 흔들림이 워낙 빨라 물이 빠질 시간이 없다. 갈 곳 없는 물의 압력은 흔들릴 때마다 올라간다.
물의 압력이 땅의 무게만큼 높아지면 알갱이들은 더 이상 서로를 누르지 않는다. 유효 응력이 0에 가까워지면 모래는 물속에 떠 있는 알갱이의 무리가 되어, 진흙탕처럼 흐르는 상태가 된다. 이때 무거운 건물은 가라앉거나 기울고, 속이 빈 하수관이나 지하 탱크는 주변보다 가벼워 위로 떠오른다. 압력이 높아진 물이 모래와 함께 땅의 갈라진 틈으로 솟구치면 지표에 작은 모래 화산 같은 분사 흔적이 남는다.
액상화가 잘 일어나는 땅
액상화가 일어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알갱이 크기가 고른 가는 모래나 굵은 실트여야 하고, 느슨하게 쌓여 있어야 하며, 지하수면이 얕아 땅속이 물에 젖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충분히 강하고 오래 이어지는 흔들림이 있어야 한다.
| 조건 | 액상화가 쉬운 경우 | 액상화가 어려운 경우 |
|---|---|---|
| 흙의 종류 | 고르고 가는 모래 | 점토, 자갈, 단단한 암반 |
| 쌓인 상태 | 느슨함 | 촘촘하게 다져짐 |
| 지하수면 | 얕음 | 깊음 |
| 땅의 나이 | 최근에 쌓이거나 매립한 땅 | 오래 굳은 땅 |
그래서 강가나 바닷가의 모래 땅, 바다를 메워 만든 매립지가 특히 위험하다. 1964년 일본 니가타 지진에서는 아파트 여러 동이 거의 통째로 옆으로 쓰러졌는데, 건물 자체는 크게 부서지지 않고 받치던 땅이 무너진 경우였다. 이 사건 이후 액상화가 공학의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7년 포항 지진 때 논과 하천 주변에서 모래가 솟아오른 흔적이 확인되어, 국내에서도 액상화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액상화에 대비하는 방법
액상화를 막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땅을 촘촘하게 다지는 것이다. 무거운 추를 떨어뜨리거나 진동기를 박아 모래를 미리 조밀하게 만들면, 지진 때 알갱이가 더 촘촘해질 여지가 줄어든다. 둘째는 물이 쉽게 빠져나갈 길을 만드는 것이다. 자갈 기둥을 땅속에 박아 두면 흔들림이 와도 물의 압력이 빨리 흩어진다. 셋째는 건물의 기초를 액상화가 일어날 수 있는 층보다 깊은 단단한 지반까지 내리는 것이다. 이미 지어진 건물과 시설을 위해서는 액상화 위험 지도를 만들어 대비가 필요한 곳을 먼저 찾는다.
남은 질문
모래가 아닌 자갈이 섞인 흙이나 점토가 조금 섞인 흙이 어떤 조건에서 액상화하는지는 아직 정확히 정리되지 않았다. 또 한 번 액상화를 겪은 땅이 다음 지진에서 더 안전해지는지, 오히려 더 약해지는지에 대해서도 사례에 따라 결과가 엇갈린다. 지진이 드문 지역일수록 땅속 정보가 부족해 위험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도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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