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더하기 computing π from the colliding balls
원과는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는 두 당구공의 충돌 횟수를 세었을 뿐인데, 기적처럼 원주율(π, 파이)의 숫자가 튀어나오는 미친 수학적 발견을 다룬다.
편집부 · 2023년 7월 29일 · 읽는 데 4분
수학에서 가장 유명한 상수는 단연코 원주율(π, 파이, 3.14159...)이다. 파이는 원의 둘레를 지름으로 나눈 값이므로, 당연히 '동그란 원'이 있는 곳에서만 등장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원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직선' 위에서, 네모난 블록 두 개가 꽝꽝 부딪히는 충돌 횟수를 세기만 했는데 파이(π)의 숫자가 툭 튀어나오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2003년 그레고리 갈페린(Gregory Galperin)이라는 수학자가 발표하여 전 세계 수학자들의 소름을 돋게 만든 '충돌하는 블록으로 파이 계산하기(Computing π from colliding blocks)'라는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역학적 마술을 파헤쳐 보자.
벽과 두 개의 블록, 당구장 세팅
마찰력이 전혀 없는 미끄러운 얼음판(1차원 직선) 끝에 단단한 '벽'이 하나 서 있다. 벽 앞에는 가벼운 '작은 블록(1kg)'이 정지해 있고, 저 멀리서 무거운 '큰 블록'이 작은 블록을 향해 미끄러져 돌진해 온다. 큰 블록이 작은 블록을 꽝! 치면, 작은 블록은 튕겨 나가서 벽에 부딪히고, 다시 튕겨 나와 큰 블록과 또 부딪힌다(완전 탄성 충돌). 작은 블록은 큰 블록과 벽 사이에서 핑퐁 게임처럼 미친 듯이 왔다 갔다 하며 계속 튕긴다. 그러다 결국 큰 블록의 속도를 늦추고 반대 방향으로 밀어내게 되면, 더 이상 충돌은 일어나지 않고 게임이 끝난다.
질량이 커질수록 파이(π)가 드러난다
두 블록의 질량이 1kg으로 똑같다면, 큰 블록이 작은 블록을 치고(1번), 작은 블록이 벽을 치고(2번), 다시 나와서 큰 블록을 치면(3번) 끝난다. 총 3번 충돌한다. 그런데 큰 블록의 무게를 100배(100kg)로 늘려보자. 무거운 블록이 밀고 들어오니 작은 블록은 그 사이에서 미친 듯이 튕기며 총 '31번'을 충돌한다. 이번엔 무게를 1만 배(10,000kg)로 늘리면? 무려 '314번' 충돌한다. 100만 배(1,000,000kg)로 늘리면 '3,141번' 튕긴다. 충돌 횟수를 순서대로 나열하면 3, 31, 314, 3141... 소름 돋게도 원주율 파이(3.14159...)의 자릿수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며 무한히 튀어나오는 것이다!
직선 운동이 원을 그리다(위상 공간)
도대체 직진만 하는 네모난 블록들의 튕김에서 어떻게 '원(Circle)'의 숫자가 튀어나온 걸까? 갈페린은 이 직선 운동을 '속도 그래프(위상 공간)'에 그렸다. x축을 큰 블록의 속도, y축을 작은 블록의 속도로 놓고 충돌할 때마다 점을 찍어 선으로 연결했다. 그랬더니 직선 위를 핑퐁 치던 두 블록의 복잡한 충돌 궤적이 그래프 위에서는 '완벽하게 동그란 원'을 그리며 회전하는 궤적으로 둔갑해 버렸다. 벽이나 블록에 부딪힐 때마다 이 원을 따라 일정한 각도만큼 깎아먹으며(부채꼴) 전진했던 것이다.
자릿수가 늘어나는 이유
큰 블록의 질량이 무거워질수록(100배, 1만 배...), 그래프 위에서 이동하는 각도는 미치도록 촘촘해진다. 이 촘촘한 각도들을 싹 다 더해서 원 한 바퀴(180도, 라디안으로 π)를 채우는 횟수를 계산해 보면, 질량의 비율이 100의 거듭제곱으로 커질 때마다 원주율 π의 소수점 자릿수를 정확하게 한 자리씩 뱉어내게 되는 완벽한 수식이 완성되는 것이다.
남은 과제
이 사고실험은 마찰력이나 에너지 손실이 0인 완벽한 세계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직접 블록을 튕겨서 파이를 계산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물리학의 에너지 보존 법칙(운동량)과 기하학의 원(원주율)이 차원을 넘어 완벽하게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증명한 가장 우아한 수학적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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