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더하기 형상 기억 합금
구부리고 찌그러뜨려도 뜨거운 물에 넣으면 마법처럼 원래 모양으로 펴지는 기적의 금속, 니티놀(Nitinol)의 결정 구조 변화와 응용 분야를 조명한다.
편집부 · 2022년 8월 4일 · 읽는 데 4분
안경을 깔고 앉아 안경다리가 완전히 엿가락처럼 휘어져 버렸다. 절망하며 안경원을 찾아가니, 안경사가 미소를 지으며 휘어진 안경을 '뜨거운 물' 속에 퐁당 빠뜨린다. 그러자 구부러졌던 쇳덩어리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스멀스멀 움직이더니 마법처럼 원래의 똑바른 안경테 모양으로 완벽하게 돌아온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만, 이 기적은 속임수가 아니라 금속 공학이 빚어낸 궁극의 마법, '형상 기억 합금(Shape Memory Alloy)'이다. 찌그러지고 박살 나도 특정 온도가 되면 자신이 원래 태어났던 모양을 기억해 내고 척척 돌아가는 이 스마트한 금속의 원자 배열 속에 숨겨진 마르텐사이트 변태의 비밀을 파헤쳐 보자.
원자의 춤, 결정 구조의 변화
일반적인 쇠 철사를 구부리면, 금속 원자들의 배열(결정 구조)이 통째로 미끄러지면서 영구적으로 박살이 난다(소성 변형). 그래서 다시 반대로 힘을 주어 펴려고 하면 끊어지고 만다. 하지만 니켈과 티타늄을 섞어 만든 형상 기억 합금(니티놀, Nitinol)은 원자들의 결합 방식이 묘하다. 이 합금을 차가운 상태에서 구부리면, 원자들이 미끄러져 박살 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도미노가 기울어지듯 지그재그(마르텐사이트 구조)로 예쁘게 쓰러지며 버틴다. 겉보기에는 철사가 완전히 구부러진 것처럼 보이지만, 현미경으로 보면 원자들이 찢어지지 않고 모양만 살짝 바꾼 채 원래의 뼈대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열을 가하면 잠에서 깬다, 오스테나이트 귀환
지그재그로 쓰러진 원자들(마르텐사이트)에게 '열(뜨거운 물)'을 가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열에너지를 받은 원자들이 번쩍 정신을 차리고, 쓰러졌던 도미노가 다시 빳빳하게 일어서듯 원래의 반듯한 큐빅 모양(오스테나이트 구조)으로 순식간에 복귀해버린다(상변태). 원자들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니, 거시적으로 철사의 모양도 찌그러지기 전의 완벽한 본래 모습으로 쫙 펴지게 되는 것이다. 즉, 형상 기억 합금은 모양을 뇌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열을 가하면 가장 안정적인 원자 배열로 돌아가려는 '열역학적 본능'을 십분 발휘하는 것이다.
심장 혈관을 뚫는 기적의 스프링(스텐트)
이 마법의 금속이 가장 빛을 발하는 곳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수술실이다. 심장 혈관이 기름 찌꺼기로 막혔을 때, 의사들은 형상 기억 합금으로 만든 그물망 스프링(스텐트)을 차갑게 식혀서 바늘처럼 아주 가늘게 찌그러뜨린다. 이 가느다란 바늘을 허벅지 혈관을 통해 심장까지 쑥 밀어 넣는다. 스텐트가 심장 혈관에 도착하면, 사람의 따뜻한 체온(37도)을 받고 형상 기억 합금이 펴지는 마법이 작동한다! 가느다란 바늘이 혈관 속에서 원래 모양인 굵은 스프링으로 쫙 펴지면서 막힌 혈관을 강제로 뻥 뚫어버리고 고정되는 것이다. 가슴을 갈라 심장을 여는 끔찍한 수술을 피하게 해준 일등 공신이다.
우주선을 펼치는 지퍼
우주로 쏘아 올리는 인공위성에는 거대한 태양광 패널이나 안테나가 달려있는데, 로켓 속에 구겨 넣기 위해 종이접기처럼 꽁꽁 접어둔다. 우주 궤도에 도착해서 태양 빛을 받아 위성이 뜨거워지면, 접혀있던 형상 기억 합금 경첩이 온도에 반응하여 스스로 쫙 펴지면서 거대한 안테나를 자동으로 전개시킨다. 고장 나기 쉬운 모터나 톱니바퀴 없이 순수하게 금속의 성질만으로 우주에서 기계를 작동시키는 완벽한 꼼수다.
남은 과제
형상 기억 합금은 만들기가 미치도록 까다롭고 가격이 티타늄만큼 비싸다. 또한 수백, 수천 번을 찌그러뜨리고 펴기를 반복하면 결국 금속에 피로가 쌓여 원자 배열이 고장 나버리는(기억 상실) 내구성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금속 공학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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