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생명

지식더하기 향기의 미학

냄새 분자가 코점막에 닿아 전기 신호로 바뀌고, 뇌의 감정 중추를 직격하여 잊고 있던 기억을 폭발시키는 '후각'의 감정적, 화학적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편집부 · 2024년 5월 24일 · 읽는 데 4분

후각, 빛나는 노란색 냄새 분자가 사람의 코 위로 떠다니며 뇌의 빛나는 감정 중추(편도체)로 전기의 직격 번개를 쏘는 시각적으로 놀라운 신경 화학 일러스트레이션
후각, 빛나는 노란색 냄새 분자가 사람의 코 위로 떠다니며 뇌의 빛나는 감정 중추(편도체)로 전기의 직격 번개를 쏘는 시각적으로 놀라운 신경 화학 일러스트레이션

길을 걷다가 스쳐 지나간 사람에게서 낯익은 비누 향을 맡는 순간, 까맣게 잊고 있었던 10년 전 첫사랑과의 데이트 기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릿속에 확 펼쳐진 경험이 있는가? 시각이나 청각은 절대 만들어내지 못하는, 오직 냄새만이 가진 이 강력한 타임머신 효과를 심리학에서는 '프루스트 현상(Proust Phenomenon)'이라고 부른다. 향기라는 것은 실체가 없는 마법이 아니다. 그것은 꽃이나 향수병에서 뿜어져 나와 공중을 둥둥 떠다니는 아주 물리적인 '화학 분자(입자)' 덩어리들이다. 이 미세한 냄새 분자 몇 개가 도대체 인간의 코와 뇌 속에서 어떤 화학 반응을 일으키길래 우리의 감정을 요동치게 만들고 기억의 서랍을 억지로 열어젖히는 걸까? 가장 원초적이고 압도적인 감각, 후각의 신경화학적 미학 속으로 들어가 보자.

공중에 떠다니는 화학 분자, 후각 수용체

장미꽃에서 향기가 난다는 것은, 장미꽃의 기름 성분(휘발성 화합물) 분자들이 공기 중으로 날아가 우리 콧속으로 빨려 들어왔다는 뜻이다. 콧속 점막에는 약 400종류, 5천만 개의 '후각 수용체'라는 털(세포)들이 자물쇠처럼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 공중에 떠다니던 장미 향 분자(열쇠)가 점막의 끈적한 콧물에 녹아들어 가 후각 수용체(자물쇠)에 철컥! 하고 맞아떨어지는 순간, 이 물리적 결합은 찌릿한 '전기 신호'로 변환되어 뇌를 향해 총알처럼 발사된다. 개가 인간보다 냄새를 만 배나 잘 맡는 이유는 코점막이 훨씬 넓고 이 수용체의 숫자가 인간보다 수십 배 더 빽빽하게 박혀있기 때문이다.

뇌의 지름길, 필터를 거치지 않는 유일한 감각

시각이나 청각, 촉각은 눈이나 피부에서 수집된 신호가 뇌의 '시상(Thalamus)'이라는 검문소를 거친 뒤 뇌의 이성적인 영역(대뇌 피질)으로 배달된다. 즉, 한 번 생각을 거치고 인식하게 된다. 그런데 오직 '후각'만큼은 이 검문소를 완전히 무시하고 프리패스로 통과해 버린다. 코에서 만들어진 냄새 전기 신호는 후각 신경을 타고 뇌의 가장 깊은 본능과 감정을 관장하는 영역인 '변연계(Limbic System)'로 직행하여 냅다 꽂혀버린다. 우리가 지독한 냄새를 맡으면 '이성이 생각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토할 것 같은 불쾌감을 느끼고, 달콤한 빵 냄새를 맡으면 조건반사적으로 입에 침이 고이는 이유가 바로 후각 신호가 이성을 거치지 않고 본능(변연계)을 직격하기 때문이다. 왼쪽에는 신선한 커피 냄새를 맡는 사람을, 오른쪽에는 아늑했던 어린 시절 아침의 생생하게 빛나는 기억이 뇌에서 터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분할 화면(프루스트 현상)

기억의 방아쇠, 프루스트 현상

후각 신호가 직격하는 '변연계' 안에는 감정을 조절하는 '편도체(Amygdala)'와 기억을 저장하는 '해마(Hippocampus)'가 찰싹 붙어있다. 냄새 신호가 편도체와 해마를 쾅쾅 두들겨 패면서 들어가기 때문에, 냄새는 어떤 특정 상황의 '기억(해마)'과 그때 느꼈던 몽글몽글한 '감정(편도체)'을 하나로 강력하게 묶어서 뇌에 영구적으로 압축 저장해 버린다. 그래서 수십 년이 지나도 똑같은 비누 냄새 분자가 코에 들어오는 순간, 압축되어 있던 첫사랑의 감정과 시각적 기억이 압축 프로그램 풀리듯 머릿속에서 강제(Trigger)로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향기로 지갑을 열다, 후각 마케팅

후각이 이성을 거치지 않고 감정을 조종한다는 사실을 기업들은 놓치지 않았다. 백화점 1층에 화장품 코너를 배치하여 화려하고 비싼 향기로 고객의 기분을 들뜨게 만들고, 빵집은 일부러 갓 구운 버터 냄새를 환풍기로 거리로 뿜어내어 무의식중에 지갑을 열게 만든다. 시각적 광고판은 눈을 감으면 피할 수 있지만, 숨을 참지 않는 한 코로 밀려 들어오는 향기의 마케팅은 무방비로 뇌를 해킹당할 수밖에 없다. 복잡한 생물학적 자물쇠처럼 작동하는 비강 수용체의 미세한 다이어그램으로, 독특한 모양의 3D 냄새 분자가 제자리에 완벽하게 딸깍 소리를 내며 들어가 계단식 신경 신호를 유발합니다

남은 과제

후각은 치매(알츠하이머)와 파킨슨병 등 퇴행성 뇌 질환의 가장 강력한 예고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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