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의 완전성을 두고 벌어진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의 논쟁은 상당히 유명합니다. 특히 1935년, 아인슈타인과 포돌스키, 로젠 세 사람이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주장하기 위해 제기한 EPR 역설은 관련 논문만 몇십 년 동안 물리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주장한 것은 EPR 역설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EPR 역설이 발표되기 전 아인슈타인은 이미 두 차례 양자역학과 불확정성 원리의 모순을 지적하는 사고 실험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첫 번째로 제기된 사고 실험은 변형 이중 슬릿 사고 실험이며, 이 사고 실험이 보어에 의해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 논박되자 1930년 두 번째로 제안한 사고 실험이 바로 상자 안의 시계 사고 실험 입니다.
상자 안의 시계 사고 실험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래 그림과 같이 매우 정밀한 용수철에 상자가 달려 있고, 상자의 옆에 있는 바늘과 정밀한 자의 눈금을 이용해 용수철 저울과 같은 원리로 상자의 질량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상자 안에는 역시나 매우 정밀한 시계가 있고, 이 시계는 일정한 시간 간격에 따라 상자에 뚫린 구멍을 열고 닫습니다.

이제 상자 안에 빛을 가득 채우고 상자의 질량을 잽니다. 그 다음 광자 하나가 상자를 빠져나올 짧은 시간 동안 구멍을 열었다가 다시 닫습니다. 광자가 상자를 빠져나온 후, 상자의 질량을 다시 측정합니다.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에 의해 빠져나간 광자의 에너지만큼의 질량이 상자 밖으로 빠져나갔다고 볼 수 있으며, 따라서 광자 한 개의 유효질량만큼 상자의 질량이 줄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상자의 질량 변화, 즉 빠져나간 광자의 질량은 정밀한 용수철에 의해 정확하게 측정되므로 광자의 에너지 역시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광자가 빠져나가는데 걸린 시간은 상자 안의 시계에 의해 정확하게 측정되며, 이는 상자가 광자만큼의 에너지를 잃는데 걸린 시간과 동일합니다.
아인슈타인의 주장에 따르면 위의 사고실험을 통해서 상자가 잃은 에너지와 에너지를 잃는데 걸린 시간 두 가지 물리량을 모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고, 따라서 두 물리량의 불확정성은 0이 됩니다. 그런데 시간과 에너지는 상보적인 물리량으로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두 물리량의 불확정성의 곱은 플랑크 상수(h)보다 커야 하며, 실험 결과는 이 시간-에너지 불확정성 원리를 만족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불확정성 원리는 틀렸습니다.
아인슈타인이 보어에게 상자 안의 시계 사고 실험을 주장할 때 그 자리에 있었던 레온 로센펠드는 당시 보어의 반응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어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 아인슈타인의 설명이 끝났는데도 보어는 이렇다 할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날 저녁 내내 보어는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침통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건 사실일 수 가 없어, 사실이 아니어야 한다고, 아인슈타인이 옳다면 물리학은 끝장이야 …’ 그러나 그는 틀린 구석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보어는 아인슈타인의 사고 실험에서 허점을 찾아냅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사고 실험에서 자신이 만든 일반 상대성 이론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보어는 이 부분을 이용해 아인슈타인의 사고 실험을 반박하는 데에 성공합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장은 시간이 흐르는 속도를 변화시킵니다. 상자에서 광자가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상자의 질량이 변하고, 이는 상자의 중력장을 변화시킵니다. 중력장의 변화는 시간이 흐르는 속도를 변하게 하게 하고, 따라서 광자가 방출되는 시간에 불확정성이 생겨납니다. 또한 상자의 무게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바늘과 눈금에 빛을 쪼여야 하는데, 이때 광자들이 상자에 부딪히며 미세한 운동량의 변화를 일으키며 상자의 운동량에 불확정성이 생겨납니다. 운동량의 불확정성은 에너지의 불확정성과 연결되어 있고, 따라서 에너지 불확정성 역시 0이 아니게 됩니다.
시간 불확정성과 에너지 불확정성 모두 0이 아닌 값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둘의 곱 역시 0보다 큰 값을 가집니다. 그리고 보어는 위의 사실을 바탕으로 이 실험에서 시간 불확정성과 에너지 불확정성의 곱이 플랑크 상수보다 크다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아인슈타인의 상자 안의 시계 사고 실험에서도 불확정성 원리가 성립함을 보였습니다.
이로써 아인슈타인은 두 차례나 양자역학과 불확정성 원리의 불완전함을 증명하는 데에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5년 후인 1935년, 동료 과학자들인 포돌스키, 로젠과 함께 EPR 논증을 발표하며 다시 한 번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주장합니다.
필요한 피직스 2019 봄호
작성자: 18-079 유지환
분야: 양자역학
참고문헌
[1] Murdoch D. Niels Bohr’s Philosophy of Physic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0)
[2] Spangenburg Ray, Moser Dianne K. Niels Bohr – Gentle Genius of Denmark, NY: Facts on File (1995)
[3] Whitaker Andrew Einstein, Bohr and the Quantum Dilemma,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
[4] Jim Baggot Quantum Story,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5] 조송현 <우주관 오디세이> FOBST, 2014
이미지
[1] Aeon "Albert Einstein and Nils Bohr attend the Solway" (커버 이미지)
https://aeon.co/ideas/what-einstein-meant-by-god-does-not-play-dice
[2] 인저리타임 (상자 안의 시계 사고 실험 구상도)
http://www.injurytime.kr/news/articleView.html?idxno=4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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