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생명

지식더하기 스트레스의 정체를 찾아서

상사에게 깨질 때나 맹수에게 쫓길 때나 똑같이 분비되는 우리 몸의 비상 알람 호르몬, '코르티솔'과 자율 신경계의 맹렬한 화학적 투쟁을 파헤친다.

편집부 · 2022년 8월 23일 · 읽는 데 4분

내분비학, 신장 꼭대기에 앉아 빛나는 노란색 분자(코르티솔)를 혈류로 직접 폭력적으로 짜내는 부신의 매우 섬세한 내부 의료 시각화
내분비학, 신장 꼭대기에 앉아 빛나는 노란색 분자(코르티솔)를 혈류로 직접 폭력적으로 짜내는 부신의 매우 섬세한 내부 의료 시각화

직장 상사에게 불려가서 박살이 날 때, 혹은 중요한 시험지를 받아 들고 머리가 새하얘질 때, 우리의 몸에서는 기괴한 변화가 일어난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리고, 호흡이 가빠지며, 손바닥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우리는 이것을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생물학의 눈으로 보면, 이 끔찍한 신체 변화는 수십만 년 전 원시림에서 사자를 만났을 때 도망치기 위해 우리 몸이 발동시키는 극강의 생존 매뉴얼, '투쟁-도피 반응(Fight or Flight)'과 100% 완벽하게 똑같은 화학적 폭발이다. 맹수와 직장 상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바보 같은 인체의 경보기, '스트레스 호르몬'이 우리 몸속에서 저지르는 맹렬한 내분비계의 롤러코스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비상벨이 울리다, 교감 신경계의 폭주

위험한 상황(상사의 고함)을 인지하는 순간, 뇌 한가운데에 있는 아몬드 모양의 '편도체'가 공포를 느끼고 비상벨을 미친 듯이 울린다. 이 비상벨 소리를 들은 뇌의 시상하부는 곧바로 척수를 타고 찌릿한 전기 신호를 내려보내 몸 전체의 '교감 신경계'를 깨워버린다. 이것은 공습경보와 같다. 교감 신경이 폭주하면 부신(콩팥 위에 붙은 모자)에서 '아드레날린(에피네프린)'이라는 마약 같은 흥분제를 혈관 속으로 냅다 펌프질한다. 순식간에 심장 박동이 터질 듯이 빨라지며 근육으로 피를 몰아주고, 허파가 팽창하며 산소를 미친 듯이 빨아들인다. 당장이라도 주먹을 쥐고 싸우거나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칠 수 있는 '헐크' 모드로 변신하는 것이다.

장기전의 지배자, 코르티솔(Cortisol)

아드레날린이 100미터 단거리 스프린터라면, 위험이 5분 이상 길어질 때 투입되는 마라톤 주자가 바로 '코르티솔(Cortisol)'이다. 스트레스가 멈추지 않으면 뇌는 부신 피질에 명령을 내려 이 코르티솔을 콸콸 쏟아낸다. 코르티솔의 임무는 오직 하나, '뇌와 근육에 무조건 당분(에너지)을 때려 박는 것'이다. 그래서 간에 저장된 지방과 단백질을 억지로 녹여서 포도당으로 바꾼 뒤 핏속(혈당)으로 미친 듯이 들이붓는다. 덕분에 우리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몇 날 며칠을 밤새워 야근하며 버틸 수 있는 초인적인 에너지를 쥐어짜 내게 된다. 왼쪽에는 포효하는 검치호랑이로부터 극도의 공포에 질려 달아나는 원시 동굴인을, 오른쪽에는 늦은 회의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극도의 공포에 질려 달려가는 현대 직장인을 보여주는 분할 화면(동일한 스트레스)

꺼지지 않는 알람, 만성 스트레스의 저주

문제는 현대인의 스트레스는 사자처럼 한 번 도망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통장 잔고, 인간관계, 매일의 출근 등 현대인의 스트레스는 24시간 1년 내내 지속된다. 뇌의 비상벨이 꺼지지 않으니, 몸속에는 독한 약물인 '코르티솔'이 하루 종일 핏속을 둥둥 떠다니며 쩔어있게 된다(만성 스트레스). 코르티솔은 에너지를 근육으로만 몰아주기 때문에, 생존에 당장 필요 없는 '면역 세포'의 스위치를 아예 꺼버리고, 위장의 '소화 기능'을 마비시켜 버린다. 그래서 매일 스트레스받는 사람은 감기에 쉽게 걸리고, 밥만 먹으면 체하고 위경련(과민성 대장 증후군)에 시달리는 것이다.

뇌세포를 갉아먹는 독약

만성적인 코르티솔의 폭격은 결국 가장 중요한 '뇌'를 파괴한다. 코르티솔 농도가 계속 높게 유지되면, 기억력과 학습을 담당하는 뇌의 '해마(Hippocampus)' 세포들이 문자 그대로 쪼그라들며 말라 죽어버린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갑자기 단어가 생각나지 않고 머리가 텅 빈 것처럼 하얗게 변하는(블랙아웃) 이유가 바로 코르티솔이 해마의 신경 회로를 물리적으로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뇌의 시상하부의 미세한 다이어그램으로 빨간색 경고등이 깜빡이며 척수를 통해 전기 신호의 번개를 보내 인간의 심장 박동을 즉시 150bpm으로 올립니다

남은 과제

스트레스는 병이 아니라 인간을 생존하게 만든 진화의 가장 위대한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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