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생명

지식더하기 스토다트 분자 기계를 설계하다

원자들을 꿰어 바퀴(Ring)와 축(Axle)을 만들고, 빛과 열을 가해 모터처럼 움직이게 조립한 2016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 프레이저 스토다트의 '초분자 기계'를 소개한다.

편집부 · 2025년 6월 7일 · 읽는 데 4분

초분자 화학, 빛나는 분자 고리가 단단한 분자 축을 따라 앞뒤로 미끄러지는 것을 보여주는 '로탁세인' 분자 기계의 매우 복잡한 3D 분자 청사진
초분자 화학, 빛나는 분자 고리가 단단한 분자 축을 따라 앞뒤로 미끄러지는 것을 보여주는 '로탁세인' 분자 기계의 매우 복잡한 3D 분자 청사진

인류는 바퀴를 발명하여 수레를 만들고, 증기 기관을 발명하여 기차를 굴리며 문명을 건설했다. 이 거대한 기계 공학의 역사는 '쇠를 깎아 부품을 조립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만약 쇠를 깎는 대신, 눈에 보이지 않는 1나노미터 크기의 원자와 분자들을 레고 블록처럼 하나하나 조립해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톱니바퀴와 모터'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2016년 노벨 화학상은 바로 이 미친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낸 세 명의 분자 건축가들에게 돌아갔다. 그중에서도 프레이저 스토다트(J. Fraser Stoddart) 교수는 분자로 '바퀴'와 '축'을 만들어, 스위치를 누르면 피스톤처럼 슉슉 움직이는 '분자 기계(Molecular Machine)'의 뼈대를 창조해 냈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닌 순수한 화학 물질이 스스로 살아 움직이게 만든 초분자 화학의 기적을 들여다보자.

공유 결합을 넘어서, 기계적 결합(Mechanical Bond)의 탄생

과거의 화학자들은 플라스틱이나 약을 만들 때, 원자끼리 전자를 주고받으며 강력하게 딱 달라붙는 '공유 결합'만 사용했다. 이것은 레고 블록을 아예 본드로 꽉 붙여버린 것과 같아서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스토다트 교수는 본드로 붙이지 않고, 마치 열쇠고리에 열쇠를 끼워 넣듯 분자들을 물리적으로 걸어버리는 '기계적 결합'이라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냈다. 동그란 도넛 모양의 분자(바퀴)를 먼저 만들고, 그 도넛의 구멍 사이로 길쭉한 막대기 모양의 분자(축)를 쑥 집어넣은 것이다. 그리고 도넛이 막대기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막대기 양 끝에 거대한 분자 마개(아령 모양)를 쾅! 하고 박아버렸다. 이렇게 탄생한 분자 꼬치구이 구조를 '로탁세인(Rotaxane)'이라고 부른다.

분자가 움직인다, 분자 셔틀(Molecular Shuttle)

아령 사이에 갇힌 도넛 모양의 분자 바퀴는 본드로 붙어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길쭉한 축을 따라 왼쪽 오른쪽으로 미친 듯이 미끄러지며(슬라이딩)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스토다트가 1991년에 발표한 세계 최초의 분자 기계 부품인 '분자 셔틀'이다. 도넛 바퀴가 막대기를 타고 초당 수백 번씩 좌우로 셔틀버스처럼 왕복 운동을 하는 기계 장치를, 쇳덩어리가 아니라 플라스크 속의 투명한 화학 용액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왼쪽에는 자동차의 전통적인 강철 피스톤 엔진을, 오른쪽에는 액체 비커 내부에서 동일하게 펌핑하는 10억 배 더 작은 미세한 분자 피스톤을 보여주는 분할 화면

스위치를 달다, 전기로 통제하는 기계

지들 멋대로 왔다 갔다 하는 도넛은 기계가 아니라 단순한 화학 반응일 뿐이다. 진정한 기계가 되려면 인간이 원할 때만 움직이게 하는 '스위치'가 필요하다. 스토다트 연구팀은 도넛 바퀴가 전자를 좋아하는(플러스 성질) 녀석이라는 점을 이용했다. 막대기의 양 끝에 전자가 풍부한 방(역)을 두 개 만들어 놓은 뒤, 전기 스위치를 켜서 한쪽 방의 전자를 싹 빼앗아버렸다. 그러자 도넛 바퀴가 기겁을 하며 전자가 남아있는 반대쪽 방으로 순식간에 '슉' 하고 이동해 버렸다! 인간이 전기를 찌릿 주면 도넛이 오른쪽으로 가고, 전기를 끄면 왼쪽으로 돌아오는 완벽한 '제어 가능한 분자 피스톤'이 완성된 것이다.

인공 근육과 컴퓨터 칩을 향해

이 분자 피스톤(로탁세인) 수십억 개를 실처럼 길게 연결하면 어떻게 될까? 스위치를 눌러 모든 도넛을 한쪽으로 쫙 당겨버리면, 실 전체의 길이가 쑥 줄어들며 수축하게 된다. 즉, 전기 신호만 주면 인간의 알통처럼 부풀어 오르는 '인공 분자 근육'이 탄생하는 것이다. 또한 도넛이 오른쪽에 있으면 '1', 왼쪽에 있으면 '0'으로 인식하게 만들면, 실리콘 칩을 대체할 수 있는 머리카락 10만 분의 1 굵기의 '초고밀도 분자 메모리 컴퓨터'를 뚝딱 만들어낼 수 있다. 빛나는 네온 분자 결합 스타일로 렌더링된 J. Fraser Stoddart의 초상화, 마술처럼 손에 작고 빛나는 분자 셔틀(로탁세인)을 쥐고 있음

남은 과제

이 분자 기계들은 너무나 미세하고 연약해서, 주변의 온도 변화나 용매의 산성도가 조금만 바뀌어도 고장이 나거나 형태가 박살 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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