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2월 10일, 미국의 캐릴 멀리스는 PCR(Polymerase Chain Reaction)을 개발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합니다. PCR은 Taq 중합효소를 이용하여 증폭하고자 하는 DNA를 시험관 내에서 수백만 배로 증폭시키는 기술로, 의약 기술부터 생물종의 분류, 범죄 감식에 이르기까지 현대의 생명공학은 그가 개발한 PCR을 제외하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또한 실시간 PCR과 같은 기술을 통해 DNA를 증폭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초기 DNA의 양을 파악함으로써 세포의 밀집도를 파악하는 등 미생물학과 세포생물학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PCR에서는 DNA의 양 가닥이 부착과 탈착을 반복하기에 그 사이의 수소결합을 끊기 위한 열이 공급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기존 생명공학에서 쓰이던 일반 중합효소는 기본적으로 단백질로 구성되기 때문에, PCR 과정에서 공급되는 최대 90도까지의 온도는 효소를 변성시켰습니다. 그렇기에 생명공학에서 DNA의 복제는 해결하기 힘든 난제로 남아있었습니다.
고대의 사람들은 살기 좋은 기후를 찾아 떠났고, 결국 중위도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문명을 형성시키고 번성시켜나갔습니다. 그렇기에 한 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생물종은 그리 많이 보고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대를 거쳐 오면서 인간이 갈 수 있는 범위는 증가했습니다. 바다 깊은 곳 심해로부터, 나무로 우거진 정글과 건조한 사막, 그리고 극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갈 수 있는 영역이 늘어감에 따라 발견되는 생물종 역시 증가해왔습니다.

다시 PCR로 돌아와, PCR의 문제였던 효소의 변성 문제를 해결한 것이 바로 열수구 주변에 서식하는 박테리아로부터 얻어낸 Taq 중합효소입니다. 열수구 주변의 고온·고압 환경에서도 박테리아는 DNA를 합성해야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 박테리아의 DNA 중합효소는 내열성을 갖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되었죠. Taq 중합효소를 사용한 PCR 반응에서는 기존의 방식보다 훨씬 더 좋은 효율이 나타났고, 결국 지금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극지에 대한 탐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앞선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극한 지역에 대한 탐구는 PCR이라는 생명공학의 필수요소를 개발시켜냈고, 우리 삶의 질을 크게 증진시키는 데 일조하였습니다. 극지는 현재 지구상에서 우리가 가장 가보지 못한 곳이며, 그렇기에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현재 과학 분야의 가장 큰 흐름은 무엇일까요? 단연 줄기세포와 시스템생물학 등을 앞세운 생물학 분야일 것입니다. 과거 주류를 이루었던 생태학, 동물학 등의 분야에서, 현재 생물학은 세포와 DNA에 이르기까지 미시적인 단계로 나아가고 있으며, 무병장수와 위생적 삶을 원하는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점점 생명공학 분야 역시 발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극지는 비교적으로 탐구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은 미지의 지역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발견되었던 자원들을 제외하고도 여러 광물자원들 역시 존재합니다. 그러나 다른 자원들보다 특히나 주목받는 것이 생물자원으로, 지금껏 발견되지 않았던 수많은 특징들을 갖는 다양한 생물들을 발견할 수 있을뿐더러 그들의 생체를 모방하고 화학물질 등을 얻어내며 기존의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극지 생물, 그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일단 극지 생물과 기존 생물과의 차이점을 분석하는 것이 첫 과정입니다. 북극과 남극을 비롯한 극지의 생물들은 극지의 환경에 맞추어 점점 진화해왔음이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극곰이나 북극여우 등에서 나타나는 외형적인 특성으로부터, 미생물이나 DNA의 조그마한 화학적 구조까지 여러 차이가 발견됩니다. 극지의 포유류들은 한랭한 기후에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신체의 말단부를 뭉툭하게 하고 퇴화시킴으로써 표면적을 줄여 외부로부터 냉기가 들어오는 것을 막고, 눈에 잘 띄지 않기 위해 흰색 몸을 갖는 방향으로 진화하였으며, 이는 이전의 생물 연구를 통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리고 남극의 펭귄들은 ‘허들링’이라는 과정을 통해 서로의 체온을 유지시키려 한다는 동물행동학적 연구 결과 역시 있습니다(7). 그러나 최근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DNA 감식기술과 화학 물질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자, 점점 더 미시적인 차이가 발견되기 시작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경상대 윤대진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극지나 사막과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온 ‘할로파이트’ 종들은 우리가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식물들이 포함된 ‘글루코파이트’ 종들보다 환경에 의한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유전자를 더 많이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3,4). 또한, 극지의 어류와 미생물들에게서는 동결 방지 단백질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1,2). 그리고 알래스카딱정벌레와 같이 극지에서 사는 곤충들에게는 당류와 지방산으로 이루어진 천연 부동액이 체내에 존재하는데(5), 이 역시 극지 생물이 극지의 혹한 환경에서 버티기 위해 크게는 동물행동학적인 측면으로부터 작게는 유전적이고 화학적인 측면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진화해왔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이런 극지 생물들의 특성을 파악한 후에는, 그 특성을 이용하기 위한 연구 분야를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 연구된 대표적인 것으로는 줄기세포가 있습니다. 줄기세포는 여러 종류의 세포들로 다양하게 분화될 수 있다는 장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연구뿐만이 아니라 치료 측면에도 널리 쓰입니다. 이런 줄기세포의 치명적인 단점은, 채취 후 보존 기간이 약 3일로 비교적 짧아 수출이나 보관이 매우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냉동보관을 통해 그 기간을 늘려보고자 하였으나, 동결 과정에서 얼음 결정이 줄기세포를 훼손시키는 것이 발견되었고, 이 과정에서 합성된 화합물을 넣어 결정의 형성을 막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화합물들 역시 세포의 활성에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이야기 역시 꾸준하게 제시되어 왔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제시된 것이 바로 북극의 해양미생물로부터 얻어낸 동결방지단백질입니다. 이들은 생체에서 얻어낸 천연물들이기 때문에 세포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될 것으로 판단되며, 그 기간 또한 효과적으로 늘릴 수 있기 때문에 미래 치료기술에 큰 기여가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생물 분야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거시적으로 펭귄의 움직임을 분석해 효과적인 열의 흐름 모형을 구현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8) 펭귄 무리는 서로 모여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나, 30~60초마다 5~10㎝씩 움직이는데요. 그들은 파동처럼 무리 중심을 향해 나아갑니다. 각 펭귄과 주위의 펭귄의 위치관계에는 큰 변화가 존재치 않으며, 바람이 불고 그 방향으로 무리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가장자리의 개체와 안쪽 개체의 위치가 달라지게 됩니다.(7)
미국 머시드 캘리포니아대의 응용수학 연구팀에 따르면, 펭귄들의 움직임은 수학적으로 표현할 때 그들은 ‘허들링’과정을 통해, 각각 펭귄들의 특성과 바람의 방향에 맞추어 서로의 위치를 조정함으로써 집단 전체의 열을 그 구성원들에게 거의 동등하게 분배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는 열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분배하고 보존할 수 있는지 알려줌으로써, 열 보존이 필요한 여러 분야에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는 생물뿐만이 아니라 수학과 물리학이 함께 사용되어 연구가 수행되었으며, 이들뿐만이 아니라 화학, 공학등에 널리 쓰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며 극지 연구에는 비단 한 분야뿐만이 아니라 융합적인 사고가 동반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극지 생물 연구는 동물과 미생물에게서 얻을 수 있는 단백질이나 화학물질을 연구하거나, 동물들의 행동학을 연구하는 등 전체적으로 식물보다는 동물에 치우쳐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식물들의 생태와 그 포함물질들에 대해서도 꾸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라말리나 테레브라타’라는 극지식물로부터 추출한 ‘라말린’물질에 대한 연구를 꼽을 수 있습니다.(6) 이 물질은 현재 화장품의 원료로 쓰이고 있는데, 비타민 C의 50배에 이르는 항산화 물질로, 그 효과가 매우 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극지 식물로부터 새로운 물질을 얻어내어 의약 분야나 산업 분야에 쓸 수 있을 것이며, 그 유전 정보를 분석함으로써 극지와 같은 혹한의 환경에서 동사하지 않을 수 있는 GMO 식물을 개발해 농업 분야의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몇몇 생물학 분야, 특히나 세포생물학과 같은 분야에서는 세포를 잠시 동결시켜 세포의 활성을 멈추게 하고 실험에 필요한 처리를 한 후, 다시 녹여 실험을 진행하는 등의 과정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 과정에서 오직 DNA 생산만은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럴 경우, 세포의 다른 모든 기능들은 정지되지만 DNA를 복제하는 DNA 중합효소는 활동을 계속하여야 합니다. 이때, 극지생물의 세포로부터 채취한 항동결성 DNA 중합효소를 이용한다면 그 과정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제목과 같이, 저는 극지생물에 대한 연구로부터 생물학 연구의 완전한 반전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는 우리가 극지에 대해서 더욱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야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며, 극지 연구는 미래를 위하는 것이라는 점을 우리 모두에게 상기시켜줄 것입니다.
바라던 바이오 2019 봄호
작성자: 18-007 권이태
분야: 극지생물학, 동물행동학, 생화학, 생명과학 등 생물 전반
참고문헌:
[1] 민동훈, 세계 최초 남극 해양미생물 활용 혈액 동결보존제 개발, 머니투데이, 2018.06.27.
[2] 김학준·강성호, 극지과학자가 들려주는 결빙방지단백질 이야기, 지식노마드, 2014.09.01.
[3] 원호섭, 극지생물 유전자 넣으니…추위에 끄떡없는 벼, 매일경제, 2018.06.27.
[4] 김규태, 극지-사막에 사는 식물엔 특별한 유전자가 있다, 동아일보, 2011.08.08.
[5] 이영완, 극지생물 '천연 부동액'으로 줄기세포 냉동보관, 조선일보, 2009.12.17.
[6] 강광우, 비타민C 50배 라말린·얼지 않는 단백질…생물자원 활용 '마드리드 의정서' 넘는다, 서울경제, 2018.02.06.
[7] 최종욱, 펭귄이 남극에서 얼지 않는 이유는?, 한겨레, 2007.08.17.
[8] 최영준, 펭귄들이 추위를 견디는 방법은 이기심이 아닌 수학!, http://dl.dongascience.com/magazine/view/M201212N003, 2018.10.06.
[9] Aaron Waters, François Blanchette , Arnold D. Kim., “Modeling Huddling Penguins”, PLoS ONE 7(11): e50277. doi:10.1371/journal.pone.0050277, 2012
이미지:
[1] https://blog.naver.com/jayu_sae/40008663652
[2]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23079
[3] Aaron Waters, François Blanchette , Arnold D. Kim., “Modeling Huddling Penguins”, PLoS ONE 7(11): e50277. doi:10.1371/journal.pone.005027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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