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생명

지식더하기 고분자 치료제로서의 기능

독한 약물을 플라스틱 같은 고분자 캡슐 안에 꽁꽁 싸매어, 정상 세포는 건드리지 않고 오직 암세포만 찾아가 폭탄을 터뜨리는 스마트 약물 전달 시스템을 소개한다.

편집부 · 2024년 5월 13일 · 읽는 데 4분

마치 트로이 목마처럼 혈관을 통과하여 치명적인 붉은 화학 요법 약물을 녹색 종양 세포로 안전하게 직접 전달하는 빛나는 나노 고분자 캡슐의 시각적으로 놀라운 의료 일러스트레이션
마치 트로이 목마처럼 혈관을 통과하여 치명적인 붉은 화학 요법 약물을 녹색 종양 세포로 안전하게 직접 전달하는 빛나는 나노 고분자 캡슐의 시각적으로 놀라운 의료 일러스트레이션

항암 치료는 종종 환자에게 '벼룩을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끔찍한 고통을 안겨준다. 독한 항암제를 혈관에 주사하면, 이 약물이 암세포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머리카락 세포, 위장 세포 등 정상적으로 빠르게 분열하는 멀쩡한 세포들까지 마구잡이로 학살해 버리기 때문이다. 머리가 빠지고 구토를 하는 끔찍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현대 약학자들은 기막힌 아이디어를 냈다. "약물에 '스마트 포장지'를 씌우면 어떨까? 멀쩡한 세포 앞에서는 포장지가 절대 안 열리다가, 오직 암세포를 만났을 때만 포장지가 쫙 찢어지며 독을 뿜어내게 만들자!" 플라스틱 같은 덩치 큰 분자(고분자)를 이용해 독약을 꽁꽁 싸매고 암세포만 정밀 타격하는 현대 의학의 스마트 폭탄, '고분자 약물 전달 시스템(DDS, Drug Delivery System)'의 화학을 만나보자.

고분자 트로이 목마를 만들다

분자량이 수만에서 수십만에 이르는 거대한 덩치의 화합물을 '고분자(Polymer)'라고 부른다. 우리가 쓰는 플라스틱이나 비닐이 바로 고분자다. 과학자들은 핏속에서 스스로 녹아 없어지는 안전한 생분해성 고분자를 실이나 스펀지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고분자의 뼈대 틈새에 아주 독한 항암제(약물)를 꽁꽁 묶어서 가둬버렸다. 이 캡슐(트로이 목마)을 혈관에 주사하면, 항암제가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약이 온몸을 돌아다녀도 멀쩡한 세포들은 독약에 맞을 일이 없어진다. 부작용의 공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암세포의 엉성한 혈관을 노려라, EPR 효과

그렇다면 이 고분자 캡슐은 어떻게 암세포만 귀신같이 찾아갈까? 비밀은 암세포가 만들어낸 '불량 혈관'에 있다. 암세포는 너무 빨리 자라다 보니 주변에서 피(영양분)를 미친 듯이 끌어오려고 급하게 혈관을 새로 만들어낸다. 급하게 날림 공사로 지은 암세포 주변의 혈관들은 정상 혈관과 달리 벽돌 틈(혈관 벽)이 숭숭 뚫려 있다. 혈관을 타고 순찰하던 거대한 고분자 캡슐은 정상 세포의 촘촘한 혈관은 통과하지 못하지만, 암세포 주변의 숭숭 뚫린 불량 혈관 틈새로는 쏙쏙 빠져나가 암세포 주변에 무더기로 쏟아져 쌓이게 된다. 이것을 'EPR 효과'라고 부르며, 고분자 치료제가 암세포만 골라서 정밀 타격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물리적 원리다. 왼쪽에는 원시의 독성 화학 요법이 건강한 푸른 세포와 모낭을 파괴하는 것을 보여주고, 오른쪽에는 스마트 폴리머로 코팅된 약물이 건강한 세포를 완전히 우회하는 것을 보여주는 분할 화면

시한폭탄의 뇌관을 설계하다, 산성도(pH) 감응성

암세포 주변에 캡슐이 잔뜩 쌓였다면 이제 포장지를 뜯어 폭탄(약물)을 터뜨릴 차례다. 하지만 아무 때나 터지면 곤란하다. 과학자들은 고분자 캡슐에 기가 막힌 '화학적 센서(뇌관)'를 달았다. 암세포 주변은 젖산이 많이 뿜어져 나와 정상 세포보다 묘하게 쉰내가 나는 '산성(낮은 pH)' 환경을 띤다. 과학자들은 이 산성 환경에 닿으면 화학 결합이 스르륵 풀리면서 툭 끊어지는 고분자를 설계했다. 평소(중성 피)에는 단단하게 닫혀있던 캡슐이 암세포 주변의 산성 피를 만나는 순간, 뚜껑이 쫙 열리면서 그동안 품고 있던 치명적인 항암제를 종양 한가운데로 융단폭격하듯 쏟아붓는 것이다.

머무는 약, 패치와 임플란트

고분자 약물 전달 기술은 꼭 주사기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먹으면 하루 만에 오줌으로 다 빠져나가는 약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약물을 고분자 스펀지에 섞어서 피부 밑에 이식(임플란트)하거나 피부에 붙이는 '패치' 형태로 만든다. 스펀지가 피부 속에서 한 달, 두 달에 걸쳐 아주 천천히 분해되면서 약물을 24시간 내내 일정한 속도로 뿜어내게 만드는 것이다. 매일 주사를 맞아야 하는 당뇨병 환자나 호르몬 치료 환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삶의 질을 바꿔버리는 기적의 기술이다. 암세포를 둘러싼 고산성 환경을 감지할 때만 약을 방출하기 위해 풀리고 용해되는 폴리머 사슬의 클로즈업 다이어그램

남은 과제

고분자 입자가 너무 크면 간이나 비장에서 걸러져 버리고, 너무 작으면 정상 혈관으로 새어 나간다. 수십 나노미터 크기의 이 미세한 포장지의 크기와 생분해 속도를 환자의 몸 상태에 맞게 100% 완벽하게 통제하는 나노 공정이 신약 개발의 승패를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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