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인간은 게놈편집을 타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라는 유명한 문장이 있다. 인구 증가 속도를 식량 생산 증가 속도가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에 인구 증가를 억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의 서장에 등장하는 이 문장은 식량의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증대시켜주는 비료의 등장으로 논파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 식량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약 10억 명의 사람이 굶주리고 있으며 영양실조에 걸려있다. 미래에는 기아에 허덕이는 인구가 30억 명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5초마다 한명이 영양실조로 굶어죽고 3분에 1명씩 비타민 A 결핍으로 시력을 잃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식량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그런가? 아니다. 사실 지구는 현재의 두 배 정도 되는 인구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한다. 오늘날 세계인구는 약 70억인데, 1984년 FAO의 평가에 따르면 120억의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한다. 30년 전의 농업생산력을 기준으로도 120억의 인구를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다는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굶주릴까? 이유는 간단하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확보할 경제적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 산업혁명 덕분에 생산성이 향상되어 물질적인 결핍이 사라지게 되었지만, 사회 구조 때문에 식량이 불공평하게 분배되어 식량을 살 경제적 수단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매년 수백만이 굶어 죽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토지개량도, 사막화 대책도, 빈민가의 인프라 정비도, 우물 파기 프로젝트도 결국은 응급조치에 지나지 않는다. 기아와 식량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자급자족경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안타깝게도 사회 구조의 개혁이라던가, 자본의 재분배 등은 과학자가 할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돌아가는 식량의 효율을 높인다면 어떨까? 과학자들이 과학의 힘으로 소 한 마리를 키우더라고 기존의 소보다 더 많은 양의 고기가 나오고, 수확량이 더 많은 작물을 공급한다면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서 한 마리의 돼지를 사육하는 데 같은 양의 작물이 들어도 더 많은 고기를 얻을 수 있는 품종이 있다면, 혹은 밀을 재배하는데 같은 양의 물과 양분, 노동이 필요해도 더 굵고 튼튼한, 영양도 풍부한 밀알을 생산하는 품종이 있다면. 그들의 식량사정은 아마도 점점 개선되지 않을까? 지구적인 관점에서 봐도 그러한 품종들이 있다면 사육 혹은 재배하는 양을 줄여도 될 것이기에 오염도 줄일 수 있고, 한정적인 자원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이득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더 많은 고기를 주고, 더 큰 이익을 가져다 주는 품종을 제작할 수 있을까? 사실 답은 나와 있다. 유전자를 조작하면 된다.


유전자 재조합? 게놈 편집?
파란 장미, 14년이 걸렸다

예전에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통한 품종 개량이 주를 이루었지만, 현재는 게놈 편집이라는 기술이 대세라고 한다. 이미 많은 연구자들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눈에 띄는 결과들도 속속들이 보고되고 있는 실정이다. 유전자 재조합 기술과 게놈 편집 기술의 가장 큰 차이점은 소모되는 시간이다. 유전자 재조합 기술은 원하는 유전자가 정확한 위치에 끼어 들어가도록 조작할 수 없다. 단순히 확률에 기댈 뿐이다. 하지만 게놈 편집은 다르다. 특정한 유전자를 원하는 위치에 정확히 끼어들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유전자 재조합 기술로는 100년 정도 걸릴 것으로 전망되던 것이 게놈 편집 기술을 사용하니 1년만에 성공하는 등 엄청난 시간의 단축이 가능해졌다.


게놈 편집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 것일까? 게놈 편집 기술은 크게 3세대로 나눌 수 있다. 1세대 게놈 편집 기술은 약 20년 전에 등장한 징크 핑거 뉴클레아제(ZFN: Zinc Finger Nuclease)다. 생물의 유전자는 네 종류의 염기를 통해 정보를 저장하고, 세포 안에는 특정 염기에 결합하는 단백질이 존재한다. 징크 핑거 뉴클레아제는 이 성질을 응용해 우선 편집하고 싶은 DNA 염기 서열과 결합하는 단백질(징크 핑거)을 설계해 제작한다. 이렇게 제작된 단백질을 세포 안에 넣으면 수만 개의 유전자에서 목표로 하고 있는 유전자만을 찾아 결합한다. 또한 징크핑거에는 유전자를 잘라 내는 제한 효소(restriction enzyme)의 일부가 연결되어 있다. 이 효소는 단백질이 목표로 하는 유전자와 결합했을 때 가위 역할을 해서 유전자를 절단해 작동을 멈추게 한다. 하나의 징크 핑거는 세 개의 염기를 한 조로 인식한다. 즉 코돈 하나당 징크 핑거 하나가 대응되는 것이다. 이어서 2010년경에 등장한 2세대 기술인 탈렌(TALEN: Transcription Activator-Like Effector Nuclease)은 이전에 비해 꽤나 발전한 기술이다. 이는 하나의 염기에 하나의 TAL리피트(단백질)가 결합하는 방식이다. 탈렌은 표적으로 삼지 않은 DNA서열을 자르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1세대 기술은 정확도가 낮다는 문제, 2세대 기술은 제작이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러던 중 3세대 기술인 크리스퍼 캐스9이 탄생했다. 크리스퍼 캐스9(CRISPR-Cas9)은 2012년에 발표된 논문에서 발전한 새로운 기술이다. 보통 ‘크리스퍼’라 불리는데, 게놈 편집은 크리스퍼 캐스9의 등장과 함께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크리스퍼 캐스 9
크리스퍼 캐스 9

세균에는 ‘크리스퍼(CRISPR: 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 라 불리는 DNA 서열이 존재한다. 세균이 바이러스 감염에 저항하기 위해 이 부위를 사용한다는 사실은 당시에도 꽤 알려져 있었으나 작동 원리는 많은 부분이 미지에 싸여 있었다. 이어 크리스퍼에는 특이적으로 반복되는 서열이 있는데, 그 사이에 바이러스의 DNA일부가 섞여 있음이 밝혀졌다. 그 정체는 과거에 감염되었던 바이러스의 유전자 파편으로, 세균은 이 파편을 이용하여 다시 동일한 바이러스가 침입했을 때 ‘캐스9(Cas9: CRISPR Associated Protein 9)'이라는 효소로 바이러스의 DNA를 절단해서 자신을 방어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사람을 포함한 척추동물은 한 번 감염되면 병원체의 특징을 기억하는 면역 세포 시스템 때문에 한번 걸린 병이 다시 감염되면 가벼운 증상만 겪는다. 병원체인 세균의 특징을 기억하고 있을 경우, 다시 감염되었을 때 높은 효율로 병원체를 배제할 수 있다. 이를 ’획득 면역‘ 이라고 하는데 세균에서 발견된 크리스퍼 캐스9의 작동 방식은 이와 많이 닮아 있다. 다만 기억의 대상이 세균이 아닌 유전자의 염기 서열일 뿐이다. 즉 세균은 유전자의 서열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획득 면역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연구원들은 개량을 통해 목표로 하는 DNA 서열을 인공적으로 손쉽게 절단하는 도구로 크리스퍼와 캐스9을 활용할 수 있음을 보였다. 크리스퍼 캐스9은 크게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RNA로 만들어진 ’가이드 RNA‘와 DNA를 절단하는 효소인 ’캐스9‘이다. 가이드 RNA는 문자 그대로 DNA중에 어떤 부분을 표적으로 삼아 절단할 것인지를 안내한다. RNA와 DNA의 염기는 상보적으로 결합한다는 특성을 이용해 약 30억 개의 염기 서열로 이루어진 사람의 게놈에서 자신과 정확하게 결합하는 DNA 서열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 가이드 RNA는 DNA의 이중 나선을 절단하는 효소인 캐스9과 하나의 복합체를 형성한다. 유전자를 조작하고 싶은 세포 안에 이 복합체를 주입하면 목표한 DNA서열을 찾아내 캐스9이 DNA를 절단한다. 세포는 DNA가 절단되었을 경우 이를 복구하려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원래 서열로 복구되면 또다시 크리스퍼 캐스9이 작동하여 다시 이를 절단한다. 이 과정이 계속 반복되는 중에 ’복구 오류‘가 나타나고 원래의 서열과 몇몇 염기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변화가 나타나면 크리스퍼 캐스9은 작동을 멈추고, 복구 오류로 변화된 서열은 원래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런 식으로 목표로 하는 유전자를 정확히 찾아내 파괴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이 기술을 통해 원하는 곳에 유전자를 추가하는 것도 가능한데, 크리스퍼 캐스9과 함께 추가하고 싶은 DNA 서열을 넣으면 세포가 절단된 부분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추가된 DNA 서열을 흡수하게 된다. 현재 가이드 RNA를 제작하는 일은 누구든 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작업이 됐을뿐더러 1세대, 2세대에서 가이드 역할을 했던 단백질이 3세대 기술에서는 필요 없게 되어서 사실상 RNA와 캐스9을 준비하는 것으로 게놈 편집에 필요한 모든 준비가 끝나게 된다. 또한 작업 과정 역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간단해졌기에 유전자 조작의 허들이 급격히 낮아지게 되었다. 물론 문제점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다. ‘오프 타깃’ 작용으로 불리는 현상이 있는데, 완벽히 목표로 한 유전자만을 표적으로 삼지 못하는 현상이다. 그렇기에 어떻게 하면 이 오프 타깃 작용을 줄일 수 있는지가 중요한 보완점이 될 것이다.


게놈 편집, 윤리적인 문제는?

그러나 윤리적인 관점에서의 게놈 편집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게놈 편집은 동식물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위 ‘디자이너 베이비’ 라고 불리는 유전자 조작 인간이 탄생할 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발현이 불가능한 수정란을 가지고 게놈 편집 실험을 했다가 국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전적이 있다. 이 실험으로 인해 윤리적인 문제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 과학아카데미는 인간 수정란에 대한 게놈 편집과 관련하여 의견을 하나로 모아 공통된 결론을 도출하고자 활발히 움직였다. 2015년 12월, 3일에 걸쳐 워싱턴 DC에서 ‘인간 게놈 편집 국제회의’가 개최되었다. 3일간의 회의를 마치며 인간 게놈 편집 국제회의는 그 성과로 하나의 성명을 발표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생식 세포나 수정란에 대한 게놈 편집은 기초 연구에 한하여 적절한

법과 윤리적 규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임상 응용,

즉 모태에 착상시키는 임상 연구나 치료에 관해서는 기술이 부적절하거나

불충분할 위험이 있으며, 유해한 결과가 산출될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있다. (중략) 안전성과 유효성, 그리고 사회적 합의와 같은 조건이

만족되지 않는 한 인간의 수정란이나 생식 세포에 게놈 편집을 가하여

임상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는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입장을 밝힌다.


이 성명서는 게놈 편집을 행한 생식 세포 혹은 수정란은 임상적으로 응용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금지하지만, 기초 연구는 권장하고 있다. 지속적인 논의의 필요성을 제안하면서 장래에는 임상 응용을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그러므로 과학 기술이 충분히 발전해서 어떠한 유해도 없다고 판단되면, 언젠가는 자신의 아이를 직접 디자인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게놈 편집을 통해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변화할뿐더러 예전과 같은 사고방식으로는 이 세계를 이해하고 헤쳐 나갈 수 없을 것이다. ‘게놈 편집 시대’ 에 맞는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공유해야만 한다. 이 기술이 그려낼 새로운 세상은 어쩌면 이미 시작 되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바라던 바이오 2019 여름호


작성자: 18-056 서명진

분야: 유전학


참고문헌:

[1] NHK 게놈 편집 취재반, 생명의 설계도 게놈 편집의 세계, 이형석 옮김, 바다출판사, 2017


이미지:

[1]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grt2001&logNo=221139735211&categoryNo=19&parentCategoryNo=0&viewDate=&currentPage=1&postListTopCurrentPage=1&from=postView

[2]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tigma86&logNo=220834460764&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3]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264891

[4] http://scienceon.hani.co.kr/142544

[5]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01/20171001016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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