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이룩한 지식 중 가장 가치있는 지식은 무엇일까요? 문명이 갑자기 사라지고, 인류가 세상을 다시 일으켜야 때 후세에게 전해줄 단 한 문장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과연,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라는 질문은 과학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제입니다.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화학과 물리학, 고전물리학과 열역학이 서로 연결되었고, 질문을 더욱 깊이 생각하는 과정에서 양자역학이라는 전대미문의 분야가 탄생하기까지 했으니까요.
조금은 이상한 원자론의 역사
그래서 잠시 시간을 들여, 원자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떠올려 보겠습니다. 우선 교과서에는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부터 소개합니다. 철학적으로는 유물론의 태동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당시의 과학은 철학의 한 부류로서 세상에 대한 그럴듯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수준이었습니다. 때문에 데모크리토스 이후의 의미있는 발전은 무려 2000년도 더 지나, 영국의 화학자 존 돌턴이 이뤄냅니다. 화학현상을 여러 종류의 원자들이 상호작용 하는 것으로 설명해 내면서, 존 돌턴은 과학적 원자론의 시초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얻게 된 셈이지요. 하지만 돌턴 이후로 원자론은 물리의 분야로 넘어갑니다. 전자를 발견한 톰슨, 원자핵을 발견한 러더퍼드, 양성자와 중성자를 발견한 골드슈타인과 채드윅까지, 모두 하나같이 물리학자입니다.
더욱 이상한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19세기에는 과학기술이 세상을 대대적으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과학의 힘을 목격한 사람들은 과학 연구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다양한 학문 분야들이 폭발적으로 발전했습니다. 플레밍의 항생제, 파스퇴르의 살균기술, 패러데이와 맥스웰의 전자기학, 기차와 전화, 전기의 보급까지, 실로 많은 변화와 발전들이 숨가쁘게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1802년 돌턴의 원자론 이후, 1897년 전자가 발견되기까지는 무려 95년에 달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긴 시간동안 원자론이라는 혁신적이고 놀랍도록 정확한 이론은 어떻게 변화했을까요? 교과서에서는 볼 수 없던 볼츠만과 마흐, 두 과학자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루트비히 볼츠만
루트비히 볼츠만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25살에 그라츠 대학의 교수가 된, 희대의 천재였습니다. 어려서부터 물리학과 수학에 놀라운 재능을 보였던 그는 평생에 걸쳐 기체분자운동론을 연구하고, 맥스웰-볼츠만 분포, 엔트로피에 대한 고찰 등의 발전을 이뤄냅니다. 그리고 <Vorlesungen über Gastheorie>, 혹은 <기체학 강론> 이라는 책을 쓰면서 통계물리학이라는 분야를 완성해 냅니다.

통계물리학이라는 분야를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기체를 수많은 원자들의 개별적 운동으로 설명해 내는 학문입니다. 뉴턴의 운동법칙을 따르는 수많은 원자들의 운동이 기체의 거시적인 특징을 결정짓는다는 것이죠. 물론 볼츠만 이전에도 맥스웰, 클라우지우스 등의 과학자들이 원자들의 운동으로 기체를 설명한다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지만, 볼츠만은 아이디어를 수학적으로 구체화시키고, 통계적인 방식을 완벽하게 적용해 내며 통계물리의 체계를 완성해 냅니다.
원자론을 반대한 물리학자들
하지만 당시까지도 원자는 화학자들이 만들어낸, 특정 현상들을 그럴듯하게 설명해내는 요긴한 가설로밖에 취급받지 못했습니다. 그 누구도 원자를 보거나, 만지거나, 하다못해 간접적으로나마 그 존재를 드러내는 현상을 관찰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또한 뉴턴역학에서는 모든 현상을 거꾸로 돌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위에서 떨어진 공은, 적당한 속도로 위로 던져 원래대로 돌아가게 할 수 있으며,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물체를 다시 왼쪽으로 밀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통계역학에서는 다릅니다. 한번 퍼진 잉크는 다시 모여들 수 없고, 한 번 흩어진 열에너지는 다시 모일 수 없기 때문이지요. 때문에 뉴턴역학으로는 통계역학을 절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볼츠만은 기체분자 하나하나의 운동을 모두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 뿐이라며 방어했지만, 결국 과학자 사회에서 소외되고 맙니다.
에른스트 마흐로 대표되는 많은 물리학자들이 볼츠만을 맹렬히 비판했습니다. 특히 마흐는 광학, 역학, 초음속등 많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명망있는 과학자였을 뿐 아니라, 과학철학과 과학사학에 대한 심도있는 통찰과 학식을 갖춘 인물이었기 때문에 많은 지지자들을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속적인 소외에 시달리던 볼츠만은 생애 말년, 가족들과 함께 떠난 휴가에서 목을 매달아 생을 마감합니다.
과학은 자연을 보여줄까 ?
하지만 이러한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이 브라운 운동을 통해 원자의 존재 자체를 증명하면서 원자론은 진실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이후 플랑크의 양자화 가설 등이 제시되면서 과학자들은 원자의 개념을 받아들이게 되지요. 하지만 원자의 존재를 둘러싼 논쟁은, 과학이 자연이 가진 진실 그 자체를 보여주는지, 아니면 자연을 모사하는 수학적 모델인지라는 끝나지 않는 질문을 던져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