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도 방향이 있을까?
지구에서는 위와 아래가 어디냐는 질문에 모두 각각 하늘과 땅을 가리킵니다. ‘아래’를 중력이 작용하는 지구 중심 방향으로 잡으면 그만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우주에서 위와 아래를 가리키라고 하면 어떨까요? 만약 우리가 아득한 우주 공간에 내버려져 있다면 위와 아래를 구분하기는커녕 방향 자체를 찾지 못하고 허우적댈 것입니다.
실제로 우주에는 방향성이 존재하지 않는데, 이를 ‘우주의 등방성’이라고 합니다. 우주의 어느 방향을 보든 전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주에는 중심 역시 존재하지 않는데, “지구는 특별하지 않다”, 즉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코페르니쿠스 원리가 이러한 내용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설명하려는 대상이 우주에서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죠. 즉 이 원리에 따르면, 우리는 우주에서 특별한 장소 그리고 우주의 역사 속에서 특별한 시간을 점하고 있는 특별한 관찰자가 아닙니다.
정상우주론 vs 빅뱅우주론
우주의 중심이나 등방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우주가 정지하고 있는가, 아니면 팽창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정상우주론은 “우주는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항상 변하지 않는다”는 이론입니다. 정상우주론에 따르면 우주는 시작이나 끝이 없이 영원히 존재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물질을 꾸준히 만들어내고 일정부분 팽창합니다. 정상우주론은 20세기 중반까지 지지를 받았으나, 이내 빅뱅우주론의 등장으로 사장됩니다.
우주가 정적인 상태라는 정상우주론과는 반대로, 빅뱅우주론은 간단히 말해서 우주가 어떤 한 점에서부터 탄생한 후 지금까지 팽창하여 오늘의 우주에 이르렀다는 이론입니다.

다음 목차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우주배경복사는 빅뱅우주론의 증거가 됩니다.
우주배경복사로 우주의 등방성을 증명하다
중심도 방향성도 없는 우주는, 심지어 모든 방향으로 팽창하고 있습니다.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 복사(CMB, Cosmic Microwave Background)란 ‘관측 가능한 우주’를 균일하게 가득 채우고 있는 우주 전역에서 발견되는 약 160GHz의 주파수를 가진 마이크로파 전자기 복사입니다. 이는 뜨겁고 밀도가 높은 상태였던 초기 우주에서 발생한 흑체복사가 현재까지 남아 전파의 형태로 관측되는 것입니다.
우주가 처음 생성되었을 때, 우주는 고밀도의 뜨겁고 균일한 플라즈마로 완전히 채워져 있었습니다. 원자핵과 전자가 만들어졌지만 온도가 너무 높은 탓에 전자는 원자핵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습니다. 우주를 가득 채운 전자들이 지나다니는 광자를 흡수하고 방출하기를 반복했기 때문에 빛의 직진은 불가능했고 우주는 불투명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우주가 팽창하면서 우주의 온도는 낮아지게 됩니다. 우주의 나이가 약 38만 년이 되자 우주의 온도는 3000K까지 내려갔고 전자가 원자핵에 묶여 전기적으로 중성인 원자들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투명해진 우주의 원자에서 3000K의 흑체복사가 처음으로 방출되었고, 우주가 팽창함에 따라 그 파장이 길어져 2.7K의 전파의 형태로 지구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우주에서는 먼 곳에 있는 천체일수록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우주배경복사는 거의 우주의 나이에 가까운 거리(137억 광년)에서 온 빛이 극단적으로 파장이 1000배 넘게 늘어나는 적색편이된 상태로 우리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위 사진은 2013년 플랑크 위성이 관측한 우주 배경 복사입니다.
빅뱅우주론에서는 물질로부터 빠져나온 빛이 현재 파장이 길어진 상태로 우주 전체에서 관측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주 모든 방향에서 2.725K의 온도에 해당하는 우주배경복사가 관측되었습니다. 이것은 우주가 과거에 뜨거웠고, 매우 균일한 상태였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로서, 빅뱅우주론이 정설로 자리잡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우주배경복사는 우주 모든 방향에서 아주 약간의 온도차를 제외하고는 모두 균일하게 관측된다는 것입니다. 무려 십만분의 일 수준의 정밀도로 볼 때에야 비로소 변화가 나타납니다. 즉, 우주배경복사의 온도 요동은 0.00001K 정도 수준으로 위의 울긋불긋한 지도는 그 미세한 온도차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는 우주가 엄청나게 균일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주는 사실 등방적이지 않다? - WMAP가 발견한 '악의 축'
그런데 과학자들이 등방적이라고 생각했던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 복사를 WMAP와 플랑크 탐사선의 관측 결과, 예상하지 못했던 ‘비등방성’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는 우주의 맨 끝에서 발생한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의 모습이 전혀 상관이 없을 황도면을 기준으로 차이가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황도면의 위쪽이 아래쪽보다 약간 더 차갑고, 4중극과 8중극이 황도면에 몇 도 차이 나지 않게 정렬되어 있습니다.

위 사진은 WMAP이 관측한 악의 축입니다. 위 사진에서 CMB는 가운데 적도면을 기준으로 위쪽 반절은 조금 더 차가워 보이고, 아래쪽 반절은 조금 더 따뜻해 보입니다. 물론 이는 마이크로 켈빈 수준의 차이이지만,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즉, 이에 따르면 태양계는 우주 공간 내에서 특별한 지위를 갖는다는 것이죠. 즉, 이는 위에서의 코페르니쿠스를 위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2005년의 한 연구에서 이 현상에 대해 ‘악의 축(Axis of Evil)’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비록 이후 수치를 잘못 계산했다는 것이 밝혀지긴 했지만, 2013년 발표한 다른 연구에서는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 복사의 비등방성이 더 크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악의 축’이 빅뱅 그 자체로부터 남겨진 유적 복사선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뱅의 예상되는 기반은 정말로 분명해집니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우주론적 가정과 우주의 균일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우주의 균일성에 관한 가정이 지구 중심적인 견해를 벗어던지고자 하는 편견을 반영하는 것임을 의심한다... 우리는 질서 있는 은하에서, 질서 있는 별에서, 질서 있는 행성에서 살고 있다고 진술한 후에, 우주에서 우리의 위치가 특별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당혹스러운 발견이 될 것이다. 그런 당혹스러움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균일성에 대한 이론을 고수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의 악의 축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없을뿐더러, 통계적인 중요성 역시 분명하지 않습니다. 2014년 연구에서는 이러한 변칙 현상이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발표했고, 2016년 또 다른 연구에서는 WMAP와 플랑크의 자료를 통해 등방 우주와 비등방 우주를 비교한 결과 우주가 비등방하다는 결과를 찾지 못했습니다.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 그리고 우주의 비등방성은 아직도 미해결 난제로 남아있습니다.
배서경 | Physics & Earth Sci. | 지식더하기
참고자료
[1] https://ko.wikipedia.org/wiki
[2] https://nownews.seoul.co.kr/news/
[3] https://www.space.com/
첨부 이미지 출처
[1] https://en.wikipedia.org/wiki/Big_Bang
[2] https://www.esa.int/Science_Exploration/Space_Science/
[3] https://www.str.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