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머리카락의 강도 시험하기
가느다란 머리카락 한 가닥이 강철보다 질긴 이유를 케라틴 단백질의 3중 나선 구조와 황(S) 원자들의 강력한 화학 결합(다이설파이드 결합)으로 분석한다.
편집부 · 2021년 7월 11일 · 읽는 데 4분
영화 '라푼젤'을 보면 주인공이 자신의 길고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밧줄처럼 성벽 아래로 늘어뜨려 남자를 끌어올리는 장면이 나온다. 동화 속의 터무니없는 과장 같지만, 만약 라푼젤의 머리숱이 일반인처럼 10만 가닥 정도 풍성하다면 이 장면은 생물학적으로 완벽한 '팩트'다. 사람의 머리카락 한 가닥은 고작 0.1밀리미터도 안 되는 얇은 실오라기에 불과하지만, 이것을 한 줌으로 뭉치면 무려 10톤짜리 아프리카코끼리 두 마리를 거뜬히 들어 올릴 수 있을 만큼 무시무시한 괴력을 발휘한다. 뼈처럼 칼슘이 든 것도 아니고 플라스틱도 아닌 이 단백질 덩어리가 도대체 어떻게 강철 밧줄 뺨치는 끔찍한 인장 강도(잡아당길 때 버티는 힘)를 가질 수 있는 걸까? 미용실 바닥에 힘없이 굴러다니는 머리카락 속에 숨겨진, 자연계 최고의 분자 건축물 케라틴(Keratin)의 놀라운 화학 결합 속으로 들어가 보자.
케라틴, 자연이 꼬아 만든 궁극의 밧줄
머리카락이 질긴 첫 번째 비밀은 그 구조에 있다. 머리카락은 '알파 케라틴(α-keratin)'이라는 단백질로 꽉 차 있다. 이 단백질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꽈배기처럼 빙글빙글 꼬인 용수철(나선형) 모양을 하고 있다. 신기한 것은 이 용수철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3개의 용수철 단백질이 서로 엉켜서 하나의 '굵은 동아줄'을 만들고, 이 동아줄 수백 개가 다시 꼬여서 '더 거대한 케이블'을 만들며, 이 케이블 수천 개가 뭉쳐서 마침내 하나의 머리카락 원기둥(모피질)을 이룬다는 것이다. 현수교(광안대교 등)를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강철 와이어가 수만 가닥의 얇은 쇠줄을 꼬고 또 꼬아서 엄청난 인장 강도를 내는 원리와 완벽하게 똑같은 구조를 자연은 머리카락 속에 구현해 놓았다.
끊어지지 않는 철벽 방어, 다이설파이드 결합
하지만 단순히 꼬아놓기만 했다면 세게 잡아당겼을 때 스르륵 풀려버릴 것이다. 머리카락이 절대 풀리지 않는 진짜 화학적 비밀은 꽈배기 단백질 사이사이를 꽉 묶어놓은 '다이설파이드 결합(Disulfide bond, 이황화 결합)'이라는 강력한 화학의 사슬이다. 케라틴 단백질에는 유황(S) 원자가 잔뜩 들어있는데, 양쪽 단백질 밧줄에 있는 유황과 유황이 만나면 찰싹 달라붙어 엄청나게 질기고 강력한 '공유 결합'의 팔짱을 낀다. 이 밧줄과 저 밧줄을 묶어주는 수백만 개의 유황 용접(다이설파이드 결합) 덕분에 머리카락은 아무리 잡아당겨도 단백질이 미끄러지지 않고 강철처럼 질기게 버틸 수 있는 것이다. 오징어나 삼겹살은 질겨도 힘을 주면 찢어지지만, 머리카락은 이 유황 결합이 너무 빽빽해서 찢어지지 않는 최강의 단백질 덩어리가 되었다.
파마(Perm)의 화학, 밧줄을 부수고 다시 짓다
우리가 미용실에 가서 파마(Permanent wave)를 하는 화학적 원리가 바로 이 유황 결합(다이설파이드 결합)을 억지로 끊었다가 다시 붙이는 끔찍한 해체 쇼다. 먼저 미용사가 냄새나는 1제(환원제)를 바르면, 머리카락 속의 튼튼한 유황 결합들이 툭툭 끊어지며 머리카락이 흐물흐물한 두부처럼 변한다. 이때 롤(로트)로 머리카락을 동글동글하게 말아 형태를 강제로 잡아놓고, 2제(산화제, 과산화수소)를 듬뿍 뿌려준다. 그러면 끊어졌던 유황 결합들이 롤이 말린 구부러진 모양 그대로 억지로 다시 손을 맞잡고 굳어버린다. 강철 같은 유황 사슬을 부수고 새롭게 재조립하여 머리카락의 뼈대를 동그랗게 굳혀버린 것, 그것이 파마의 기적이다.
늘어나지만 부서지지 않는 용수철의 탄성
머리카락은 튼튼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물에 젖으면 고무줄처럼 자기 원래 길이의 30%까지 쫙 늘어났다가 놓으면 용수철처럼 띠용 하고 다시 원래 길이로 돌아간다(탄성). 물이 묻으면 단백질 밧줄 사이를 묶고 있던 약한 결합(수소 결합)들이 잠시 풀리면서 꽈배기가 길게 펴질 수 있는 틈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늘어나도 뼈대인 '유황 결합'은 끊어지지 않고 버티고 있으므로 머리카락은 찢어지지 않고 고무줄처럼 버틸 수 있다. ![빛나는 분자 다이어그램은 머리카락의 케라틴 단백질 사슬을 끊어지지 않게 유지하기 위해 단단한 노란색 유황 원자가 단단히 손을 맞잡는(이황화 결합) 것을 보여줍니다](https://image.pollin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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