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책에서 나는 냄새의 화학, 종이가 늙어 가는 과정
헌책방에 들어서면 풍기는 달큰하고 묵은 냄새는 종이를 이루는 분자가 천천히 분해되며 내놓는 물질들에서 나온다. 종이가 누렇게 바래고 부서지는 이유와 냄새로 책의 상태를 읽으려는 연구를 살펴본다.
편집부 · 2026년 11월 5일 · 읽는 데 4분
오래된 책의 냄새는 종이를 이루는 셀룰로스와 리그닌 같은 물질이 공기, 빛, 습기, 산의 영향으로 천천히 분해되면서 휘발성 유기 화합물을 내놓아 생긴다. 이 화합물들 가운데에는 바닐라 향을 내는 바닐린과 비슷한 분자, 아몬드 향을 내는 벤즈알데하이드, 빵 굽는 냄새와 닮은 퓨르퓨랄 등이 섞여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헌책 냄새는 달큰하면서도 묵은 느낌을 준다. 냄새는 곧 종이가 늙어 가고 있다는 신호다.
종이는 무엇으로 만들어지나
종이의 주성분은 셀룰로스다. 셀룰로스는 포도당 분자가 수천 개씩 긴 사슬로 이어진 물질로, 식물 세포벽의 뼈대를 이룬다. 이 긴 사슬들이 서로 얽히고 수소 결합으로 붙잡혀 있기 때문에 종이는 얇아도 질기다. 나무로 만든 종이에는 셀룰로스 말고도 리그닌이 들어 있다. 리그닌은 나무를 단단하게 만드는 물질로, 고리 모양의 분자들이 복잡하게 이어진 구조를 가지고 있다.
19세기 중반 이전의 종이는 주로 헝겊을 풀어 만들어 리그닌이 거의 없었다. 그 뒤 나무를 갈아 만든 값싼 종이가 널리 쓰이면서 리그닌이 많이 남은 종이가 흔해졌다. 이 차이가 종이의 수명과 냄새를 크게 바꾸었다.
누렇게 바래는 이유
리그닌은 빛과 산소를 만나면 쉽게 산화된다. 산화된 리그닌은 누런빛을 띠는 물질로 바뀌는데, 신문지를 햇볕에 며칠 두면 금세 누레지는 것이 이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리그닌의 고리 구조가 쪼개지며 바닐린과 닮은 향기 분자가 생긴다. 헌책에서 나는 달큰한 냄새의 상당 부분이 여기서 온다고 여겨진다.
종이를 망가뜨리는 더 큰 원인은 산이다. 19세기부터 20세기 후반까지 많은 종이는 잉크가 번지지 않도록 백반과 송진을 섞어 처리했는데, 이 처리가 시간이 지나며 산을 만든다. 산은 셀룰로스의 긴 사슬을 하나씩 끊는 가수분해 반응을 돕는다. 사슬이 짧아질수록 종이는 질긴 성질을 잃고, 결국 손으로 넘기기만 해도 가장자리가 바스러진다. 이렇게 끊어진 조각에서 퓨르퓨랄 같은 냄새 분자도 생긴다.
| 원인 | 일어나는 일 | 결과 |
|---|---|---|
| 빛과 산소 | 리그닌의 산화 | 누렇게 바램, 달큰한 냄새 |
| 산 | 셀룰로스 사슬 끊김 | 종이가 약해지고 부서짐 |
| 습기와 열 | 모든 반응이 빨라짐 | 노화가 앞당겨짐 |
냄새로 책의 상태를 읽는다
보존 과학자들은 이 냄새를 진단 도구로 쓰려 한다. 책에서 나오는 휘발성 화합물을 모아 성분을 분석하면, 종이를 찢거나 잘라 내지 않고도 그 책이 얼마나 산성화되었는지, 리그닌이 얼마나 들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오래된 종이 시료 수십 가지에서 나온 냄새 성분을 분석해, 특정 화합물의 양과 종이의 상태 사이의 관계를 찾아낸 연구가 발표되었다. 사람의 코로 맡던 냄새가 기계가 읽는 성분표가 된 셈이다.
도서관이 이런 방법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분명하다. 수백만 권의 책 가운데 어느 것을 먼저 보존 처리할지 정하려면, 책을 상하게 하지 않고 빠르게 상태를 판단할 방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래가는 종이를 만들기
1980년대 무렵부터는 탄산칼슘 같은 알칼리 물질을 넣어 산을 중화하는 중성지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중성지는 산성지보다 훨씬 오래 버틴다. 이미 산성화된 책은 알칼리 성분을 스며들게 하는 탈산 처리로 노화를 늦출 수 있다. 책을 오래 보관하려면 서늘하고 건조하며 빛이 적은 곳에 두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온도가 낮을수록 종이를 망가뜨리는 반응들이 모두 느려지기 때문이다.
남은 질문
헌책 냄새를 이루는 분자는 수백 가지가 섞여 있어, 어떤 분자가 사람이 느끼는 그 독특한 냄새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지는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다. 또 냄새 성분만으로 종이의 남은 수명을 얼마나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지도 더 많은 자료가 필요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냄새가 사라져 가는 기록의 냄새이면서도, 많은 사람에게 반가운 냄새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냄새가 기억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화학을 넘어 뇌과학의 질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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