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컴퓨터

시스템 생물학 새로운 관점에서 생명을 바라보다

생명체를 개별 유전자의 합이 아닌 전체의 거대한 상호작용 네트워크로 이해하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질병을 분석하는 시스템 생물학의 철학을 설명한다.

편집부 · 2024년 9월 15일 · 읽는 데 4분

시스템 생물학, 밝은 네온 불빛의 흐름으로 서로 연결되어 인체의 형태를 형성하는, 유전자와 단백질의 빛나는 거대한 신경망
시스템 생물학, 밝은 네온 불빛의 흐름으로 서로 연결되어 인체의 형태를 형성하는, 유전자와 단백질의 빛나는 거대한 신경망

인간의 유전자 지도(게놈 프로젝트)가 처음 완성되었던 2003년, 전 세계는 이제 모든 질병이 정복될 것이라며 샴페인을 터뜨렸다.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 버튼 하나만 찾아내어 싹둑 잘라내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현실은 참담했다. 고혈압이나 당뇨, 암 같은 복잡한 질병은 유전자 하나가 고장 나서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수백 개의 유전자와 수만 개의 단백질이 마치 얽히고설킨 거미줄처럼 미친 듯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일으키는 거대한 '나비 효과'였다. 생물학자들은 부품(단일 유전자)만 하나씩 떼어내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환원주의(Reductionism)의 낡은 방식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대신 그들은 숲 전체의 엉망진창인 네트워크를 통째로 컴퓨터에 우겨넣고 수학과 인공지능으로 분석하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선언했다. 생명을 부품의 합이 아닌,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합주곡으로 이해하려는 21세기 생명과학의 궁극적 무기, '시스템 생물학(Systems Biology)'의 경이로운 세계로 들어가 보자.

부품이 아니라 연결을 보라

비행기가 어떻게 나는지 알고 싶을 때, 엔진 부품 하나를 분해해서 돋보기로 들여다본다고 비행의 원리를 알 수는 없다. 수만 개의 부품이 어떻게 연결되고 상호작용하는지를 설계도로 파악해야만 한다. 시스템 생물학의 철학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 몸의 세포 안에는 2만 개의 유전자, 수십만 개의 단백질, 그리고 수많은 화학 대사 물질이 떠다닌다. 시스템 생물학자들은 이 A라는 단백질이 B 유전자를 켜고, 켜진 B 유전자가 C라는 화학물질을 만들어 다시 A를 억제하는 식의 무시무시하게 복잡한 피드백 고리(상호작용)를 전부 찾아내어 거대한 거미줄 형태의 '네트워크 지도'로 그린다. 특정 단백질 하나(점)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단백질을 관통하는 복잡한 '선(네트워크)'을 분석하여 생명이라는 기계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거시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빅데이터와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결합

이 거대한 생명의 거미줄을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엮을 수가 없다. 여기서 시스템 생물학의 쌍두마차인 '오믹스(Omics)' 빅데이터와 '슈퍼컴퓨터'가 등장한다. 오믹스는 세포 하나에서 유전자(유전체), 단백질(단백체), 대사 물질(대사체)의 모든 데이터를 통째로 한꺼번에 스캔하여 쏟아내는 첨단 분석 기술이다. 하루에 수 테라바이트씩 쏟아지는 이 생물학적 빅데이터를 컴퓨터의 미분 방정식과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먹인다. 컴퓨터는 세포 안의 수만 가지 상호작용을 계산하여 '가상의 세포(Virtual Cell)' 모델을 모니터 속에 완벽하게 구현해 낸다. 컴퓨터 속 가상 환자의 간 세포에 독약을 한 방울 떨어뜨렸을 때 수만 개의 단백질 네트워크가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만으로 완벽하게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생물학과 IT의 궁극적 융합이다. 왼쪽에는 단일 세포를 들여다보는 전통적인 현미경을, 오른쪽에는 세포 데이터의 거대한 웹을 분석하는 슈퍼컴퓨터를 보여주는 분할 화면

견고성(Robustness)과 약점의 발견

시스템 생물학이 네트워크 지도를 그리고 나서 깨달은 놀라운 사실은 생명체의 '견고성(Robustness)'이다. 웬만한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거나 한 가닥의 네트워크가 툭 끊어져도 생명체는 쉽게 죽지 않는다. 마치 인터넷 망의 케이블 하나가 끊어져도 다른 우회 경로로 통신이 연결되는 것(보상 기전)과 똑같다. 암세포 역시 이 지독한 견고함을 무기로 삼는다. 기존의 항암제로 A라는 단백질 통로를 폭파해 버려도, 암세포는 며칠 만에 재빨리 네트워크 지도를 수정하여 B라는 우회 통로를 만들어 다시 증식해 버린다(내성 발생). 시스템 생물학자들은 컴퓨터로 암세포의 네트워크 전체를 스캔한 뒤, 암세포가 도저히 우회할 수 없는 가장 치명적인 네트워크의 '핵심 교차로(허브 단백질)' 두세 개를 찾아내어 두 개의 폭탄(병용 투여)으로 한꺼번에 박살 내는 정밀 타격 전술을 지휘한다.

질병의 예측과 P4 의학의 시대

시스템 생물학은 치료를 넘어 '예방'의 개념을 완전히 뒤바꾼다. 건강한 사람의 유전자와 혈액 단백질 네트워크를 정기적으로 분석하다 보면, 아직 몸에 암 덩어리나 증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는데도 네트워크의 일부분이 미세하게 헝클어지기 시작하는 '전조 시그널'을 컴퓨터가 먼저 감지해 낸다. 병이 발현되기 수년 전에 네트워크를 정상으로 돌려놓는 화학 스위치를 눌러버리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미래의 의학은 예측(Predictive), 예방(Preventive), 개인 맞춤(Personalized), 참여(Participatory) 중심의 완벽한 'P4 의학'으로 진화하고 있다. ![DNA, RNA, 단백질이 복잡하고 완벽하게 동기화된 교향곡을 연주하는 악기인 생물학적 오케스트라의 추상적 시각화](https://image.pollin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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