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컴퓨터

수학을 만난 생체시계 질병을 치료하다

인간의 24시간 생체시계를 수학적 진동 모델로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투약 골든타임을 찾아내는 크로노테라피(시간 요법)의 원리를 살펴본다.

편집부 · 2022년 11월 24일 · 읽는 데 4분

생물의학 개념, 일주기 리듬을 나타내는 사인파와 함께 인간의 뇌 위에 겹쳐진 빛나는 수학적 시계
생물의학 개념, 일주기 리듬을 나타내는 사인파와 함께 인간의 뇌 위에 겹쳐진 빛나는 수학적 시계

우리는 알람시계가 없어도 아침이 되면 눈이 떠지고, 밤이 되면 어김없이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한다. 시계도 달력도 없는 동굴 속에 사람을 한 달 동안 가두어 놓아도, 놀랍게도 인간은 정확히 24시간을 주기로 자고 깨기를 반복한다. 우리 뇌 속 깊은 곳(시교차 상핵)에 태양의 움직임과 완벽하게 동기화된 보이지 않는 '생체시계(Circadian rhythm)'가 똑딱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생물학자들은 이 생체시계를 그저 호르몬이 분비되는 생물학적 습관 정도로만 여겼다. 그런데 수학자들이 이 현상에 뛰어들면서 엄청난 반전이 일어났다. 수학자들은 생체시계가 만들어내는 호르몬의 오르락내리락하는 패턴을 '진동(Oscillation) 방정식'으로 완벽하게 번역해 냈다. 그리고 이 수학 공식을 이용해, 하루 중 몇 시 몇 분에 약을 먹어야 부작용 없이 암세포를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죽일 수 있는지 투약의 '골든타임'을 계산해 내기 시작했다. 생명과 수학이 만나 탄생시킨 기적의 맞춤형 의료, '크로노테라피(Chronotherapy, 시간 요법)'의 놀라운 메커니즘을 파헤쳐 보자.

뇌 속의 진동자, 시계 유전자의 발견

우리의 생체시계는 시곗바늘이나 태엽이 아니라 '단백질의 농도'로 시간을 잰다. 201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3명의 과학자는 세포 속에 있는 '시계 유전자(Clock gene)'를 찾아냈다. 이 유전자는 낮 동안에 특정 단백질(PER 단백질)을 미친 듯이 만들어내어 세포 속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밤이 되어 이 단백질의 농도가 최고조에 달하면, 단백질이 스스로 억제 스위치를 눌러 자신의 생산을 중단시킨다. 그리고 밤새 서서히 분해되어 아침이 되면 농도가 0으로 바닥을 친다. 그러면 다시 스위치가 켜지며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24시간을 주기로 단백질의 농도가 높아졌다 낮아지기를 영원히 반복하는 것이다. 수학자들은 이 아름다운 화학적 펌프질을 마치 시계추가 왔다 갔다 하는 것과 똑같은 완벽한 '수학적 진동 모델'로 수식화했다.

엉켜버린 시계추, 질병의 시작

우리 몸에는 뇌에 있는 커다란 중앙시계뿐만 아니라, 간, 심장, 피부 등 수조 개의 세포마다 각자의 작은 시계들이 들어 있다. 평소에는 뇌의 중앙시계가 햇빛이라는 지휘봉을 휘두르며 온몸의 세포 시계들을 완벽하게 동기화(Synchronization)시켜 하나의 거대한 오케스트라처럼 움직이게 만든다. 그런데 매일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거나 스마트폰의 블루라이트를 쬐면, 뇌의 시계는 "지금이 낮이구나!"라고 착각하여 엉뚱한 지휘를 하기 시작한다. 간과 위장의 시계는 밤인 줄 알고 쉬려고 하는데, 뇌의 시계가 낮이라고 박자를 헝클어버리니 세포들이 엇박자로 꼬여버린다. 수학적 진동 리듬이 깨지며 혼돈(카오스) 상태에 빠진 세포들은 인슐린 분비를 망치고 혈압을 미친 듯이 올린다. 교대 근무자나 스튜어디스가 유방암과 당뇨병 발병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는,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세포 시계추가 박자를 잃고 엉켜버렸기 때문이다. 해와 달에 맞춰 호르몬 수치가 완벽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수학 방정식을 보여주는 낮과 밤으로 나뉜 사람의 초현실적인 비주얼

타이밍이 약이다, 크로노테라피

수학자들은 엉켜버린 생체시계의 미분 방정식을 분석하다가 기가 막힌 치료법을 찾아냈다. 약을 먹는 '양'보다 '시간'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먹는 콜레스테롤 저하제(스타틴)는 아침에 먹으면 효과가 뚝 떨어지고 밤에 먹어야 효과가 극대화된다. 우리 몸의 간이 콜레스테롤을 합성하는 공장을 주로 한밤중에 미친 듯이 돌리기 때문이다. 천식 발작은 기관지를 수축시키는 호르몬이 폭발하는 새벽 4시에 주로 발생하므로, 천식약은 저녁에 먹어 새벽에 약효가 최고조에 달하게 설계해야 한다. 수리생물학자들은 환자의 체온, 맥박, 수면 패턴 데이터를 인공지능에 먹이고 진동 방정식을 돌려, 환자의 세포 시계가 하루 중 언제가 가장 취약한지 초 단위로 계산해 내는 '투약 시간표'를 작성해 냈다. 이것이 바로 시간 요법, 크로노테라피다.

수학이 암세포를 속이는 법

크로노테라피의 진가는 독성이 강한 '항암 치료'에서 가장 빛난다. 정상 세포는 생체시계의 지독한 통제를 받아 낮에는 활동하고 밤에는 깊이 잠들어 세포 분열을 멈춘다. 하지만 미쳐버린 암세포는 시계가 고장 나 밤낮없이 미친 듯이 분열한다. 수학자들은 이 박자 차이를 이용했다. 정상 세포가 가장 깊이 잠들어 약물을 흡수하지 않는 시간대(주로 밤이나 새벽)를 수학적으로 계산해 내어, 그 시간에 맞춰 독한 항암제를 대량으로 쏟아붓는 것이다. 그러면 정상 세포는 다치지 않고 무사히 지나가고, 그 시간에도 밥을 먹겠다고 설치고 있던 암세포들만 독약을 뒤집어쓰고 전멸하게 된다. 실제로 대장암 환자에게 이 수학적 타이밍을 적용하자 항암제의 부작용이 5배나 줄어들고 생존율이 극적으로 치솟았다.

이어서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