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들뜬 마음으로 공항을 향한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길,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다. 긴 시간이 흘러 도착, 아직도 아침이다. 피곤하다. 시차 때문에 첫날 계획을 망치고 만다. 왜 우리 몸은 시차에 적응하지 못할까. 몸속에 시계라도 있는 것일까?
식물들도 마치 시간을 아는 듯하다. 낮에는 잎을 펴고, 밤에는 잎을 접는 미모사를 낮에 어두운 곳에 놓아 보았다. 잎을 접고 낮을 기다릴 것 같던 미모사는 어두운 곳에서도 여전히 잎을 펴고 있다. 미모사도 자신만의 시계를 가진 것일까.
그렇다. 인간은 물론 식물들, 미생물들까지 모든 생물은 몸속에 ‘생체시계(circadian clock)’라 불리는 시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일정한 리듬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이 시계를 조절해서 질병도 치료할 수 있다고 하는데…….
생체시계 조절을 향한 과학자들의 도전
1965년, Goodwin은 미분방정식을 이용해 규칙적인 생체 리듬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발견하였다. 분자 수준의 연구를 하기에는 부족했던 때다. Goodwin은 단백질이 스스로 합성을 억제하는 음성 피드백 과정을 미분방정식으로 나타내어, 아래와 같은 그래프를 얻었다.

파동 그래프 같아 보이기도 한다. 대체 이 그래프가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
그림 왼쪽의 함수식은 mRNA가 단백질으로 전사된 후 세포핵 안에 들어가서 mRNA의 형성을 억제하는 Negative Feedback Loop을 나타낸 것이다. 이 해를 구하면 오른쪽의 주기적인 그래프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단백질의 양이 많아지면 mRNA의 생산을 억제하고, 이는 단백질 양을 다시 감소시킨다. 이에 따라 mRNA의 생산은 다시 증가하게 되고, 단백질의 양도 함께 늘어나는 과정이 반복되는 것이다. 로트카-볼테라 모델 (Lotka-Volterra model, 포식자-피식자 모델)과 흡사하다.


Goodwin의 모델은 한계가 있었다. 그가 사용한 Hill 함수에서 매개변수가 8 이상이어야 주기적인 활동이 반복되는데, Goodwin은 이 매개변수를 1로 잡았다.
Goodwin 모델은 수많은 방향으로 확장되고 발전되어 갔지만, 여전히 일주기 리듬의 핵심 결과를 재현하는 수리모델은 만들어지지 못했다. 일주기 리듬을 만들기 위해서는 2만여 개의 수많은 세포들이 신호 전달 물질을 이용하여 소통해야 한다. 데이터가 쌓일수록 모델의 오차는 계속 증가하고, 더욱 복잡한 모델들이 등장했지만 시원찮은 결과들이었다.
KAIST 김재경 교수 연구팀은 새로운 시각에서, Hill 함수를 대체할 함수를 찾아내었다. 아래 김-폴저 모델(Kim-Forger model)이 그것이다.

이 모델에서는 핵 안의 단백질이 유전자를 직접적으로 억제하지 않는다. 유전자를 활성화하는 활성 단백질을 억제하는 것이다. Goodwin의 모델과 원리는 유사하지만 그 모양은 사뭇 다르다.
김재경 교수 연구팀은 더 많은 실험 결과를 가지고 이 모델을 더 발전시켰다. 현재 Pfiber 제약회사에서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약 200여 개의 식으로 구성된 모델이다. (문단 아래 그림 참조)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렇게 생체시계를 조절하기 위해 애쓰는 것일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효율적인 신약 개발’이라 할 수 있겠다. 수리모델을 이용하면 실험에 사용될 시간, 인력, 비용 등을 크게 절약할 수 있다. 실제로 연구팀은 생체시계와 단백질 p53 사이의 관계를 알아내기 위해 수학적 모델링을 이용한 가상 실험을 시행하였다. 그 결과, p53을 핵 내부로 이동시키는 물질이 PER2 단백질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실험을 통해 암 등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을 효율적인 방법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p53 단백질이란 무엇인가?
세포의 이상 증식을 억제하고, 암세포의 사멸을 유도하는 단백질. ‘항암유전자‘라고도 불린다. 발암물질은 p53 유전자 염기서열(A,G,T,C의 규칙적인 배열)을 변화시킨다. 이 단백질이 비활성화되면 세포는 끊임없이 분열하게 되는데, 이러한 세포들이 바로 암세포이다. 세포의 돌연변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역으로 암세포에 정상 p53을 주입하면 암세포가 스스로 죽을 것임을 예측하였다.
생체시계 조절의 활용,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생체시계 조절은 앞서 말했듯이 세포들의 의사소통에 영향을 미친다. 이 ‘의사소통’은 세포들이 신호 전달 분자를 방출하면서 서로 상호 작용하여 동기화를 이루어 내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세포들 간에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일까?
김재경 교수 연구팀은 합성생물학을 이용해 전사 회로를 만들고, 이를 박테리아에 대입하였다. 신호를 전달하는 분자를 주기적으로 내놓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박테리아들은 의사소통을 통해 서로 주기를 맞추어 신호를 전달하였다. 그러나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박테리아 간에는 의사소통에 제한이 있었다. 전사적 *양성 피드백 과정이 없으면 동기화가 불가능해 보였다.
연구팀은 이 문제를 관찰하기 위해 편미분방정식을 이용한 수학적 모델을 개발했다. 그러나 전사 회로를 이루는 분자들의 활동을 표현하려면 분석하기 복잡한 형태의 편미분방정식이 필요했다. 이에 연구팀은 모델을 ‘단순화’시켰다. 고차원적인 시스템을 원 위의 움직임으로 나타낸 것이다. 시스템이 주기적으로 일정하게 운동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결과, 전사적 양성 피드백 과정이 있으면 두 지점 간의 위치 차이가 크더라도 점점 줄어들다가 결국 동기화되는 것이 확인되었다.
수학적인 방법으로, 세포의 주기를 이용하여 실험 결과를 정확하게 규명한 것이다. 김재경 교수는 “이러한 원리는 수학을 이용한 복잡한 시스템의 단순화 없이는 찾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성 피드백(positive feedback)
단백질이 스스로 유전자 발현을 유도하는 시스템. 주변 세포로부터 전달받은 신호를 증폭시킨다.
생체시계의 연구는 현재 진행형이다. 수면 부족으로 인한 생체 리듬의 변화, 이에 따른 다양한 질병과 기억력 저하 등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 ADPR1이 2019년 8월에 발견되었다. 이어 2019년 10월에는 또 다른 유전자 NPSR1의 발견이 ‘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사이언스 중개의학)’에 발표되었다. 수학적 모델링을 이용한 생체시계의 연구가 이끌어 갈 밝은 미래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