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지구과학

선택적 전도와 절연을 하는 소재

특정 온도나 전압에서 전기가 통하는 도체와 통하지 않는 부도체 사이를 스스로 오가는 상전이 물질(모트 절연체)의 물리학적 원리를 탐구한다.

편집부 · 2024년 7월 9일 · 읽는 데 4분

재료 과학, 밝은 햇빛 광선 아래에서 투명한 절연체에서 어두운 불투명한 도체로 즉시 변하는 스마트 유리창
재료 과학, 밝은 햇빛 광선 아래에서 투명한 절연체에서 어두운 불투명한 도체로 즉시 변하는 스마트 유리창

세상의 모든 물질은 전기가 잘 통하는 '도체(구리, 철)'와 전기가 통하지 않는 '부도체(고무, 나무)'로 뚜렷하게 나뉘어 있다. 그리고 이 둘의 성질을 인간이 억지로 껐다 켰다 할 수 있게 만든 중간 물질이 바로 반도체(실리콘)다. 반도체의 발명은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탄생시킨 현대 문명의 심장이 되었다. 그런데 만약 인간이 인위적으로 조작하지 않아도, 주변의 온도나 압력 조건이 바뀌면 알아서 고무(부도체)처럼 전기를 꽉 막고 있다가 특정 순간 구리(도체)처럼 전기를 확 통하게 만드는 '이중인격'의 마법 물질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마치 얼음이 0도를 기점으로 물로 녹아버리듯, 전기가 통하는 성질이 순식간에 뒤바뀌는 이른바 '상전이(Phase Transition) 물질' 이야기다. 열을 받으면 유리가 까맣게 변해 햇빛을 차단하는 스마트 윈도우부터, 반도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뇌처럼 생각하는 뉴로모픽 칩의 핵심 소재로 떠오른 상전이 물질의 양자역학적 비밀을 들여다보자.

전자를 가둬버린 감옥, 모트 절연체

전기가 통한다는 것은 물질 내부에 있는 '전자(Electron)'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뜻이다. 구리 같은 금속은 전자들이 아주 느슨하게 결합해 있어 조금만 밀어줘도 우르르 쏟아져 흐른다. 그런데 물리학의 거장 네빌 모트(Nevill Mott)가 1949년에 예측한 기묘한 물질이 있다. 어떤 물질(예: 바나듐 산화물)은 겉보기에는 전자가 많아서 당연히 전기가 통하는 금속이어야 하는데, 막상 전기를 흘려보면 고무처럼 꽉 막힌 완벽한 부도체(절연체)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전자를 가두는 '감옥' 때문이다. 전자들은 서로 같은 (-) 극을 띠고 있어 서로를 엄청나게 밀어내려는 반발력(쿨롱 척력)을 가지고 있다. 특정 물질 구조 안에서는 이 밀어내는 힘이 너무 강해져서, 전자들이 좁은 방(원자) 하나씩을 차지한 채 서로 눈치만 보며 꼼짝도 하지 못하는 기가 막힌 교통체증(Traffic jam) 상태에 빠져버린다. 전자가 꽉 막혀 흐르지 못하는 이 양자역학적 감옥을 훗날 그의 이름을 따 '모트 절연체(Mott Insulator)'라고 부르게 되었다.

온도가 부리는 마술, 금속-절연체 상전이

이 꼼짝달싹 못 하는 전자들의 감옥을 부수는 마법의 열쇠는 바로 '온도'다. 대표적인 모트 절연체인 이산화바나듐(VO2)을 예로 들어보자. 이 물질은 상온에서는 전자가 꽉 묶인 완벽한 유리(부도체) 상태다. 그런데 온도를 가열하여 68도(℃)에 도달하는 찰나의 순간, 탕! 하는 총소리와 함께 0.0001초 만에 물질 내부의 원자 배열(결정 구조)이 미세하게 비틀리며 재배열된다. 방의 구조가 바뀌자 전자를 꽉 쥐고 있던 반발력이 순식간에 붕괴하고, 갇혀 있던 수억 개의 전자들이 댐이 무너지듯 일제히 쏟아져 흐르기 시작한다. 부도체였던 물질이 눈 깜짝할 새 구리보다 훌륭한 '금속(도체)'으로 완전히 성질이 둔갑해 버린 것이다. 이를 '금속-절연체 상전이(MIT)' 현상이라고 한다. 반대로 온도를 다시 68도 아래로 식히면, 전자들은 귀신같이 다시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찰칵 문을 잠그고 얌전한 부도체로 돌아간다. 전류를 생성하기 위해 전자가 갑자기 원자에서 자신을 해방시키는 결정 격자 구조의 미세한 모습

햇빛을 차단하는 스마트 윈도우

이 기막힌 이중인격 물질을 현실에 가져오면 엄청난 마술을 부릴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빌딩의 유리에 바르는 '스마트 윈도우' 필름이다. 한여름 뙤약볕이 내리쬐어 창문 표면 온도가 68도를 넘어가면, 이산화바나듐 필름이 순식간에 부도체에서 도체(금속)로 변신한다. 금속은 빛과 열(적외선)을 통과시키지 않고 반사해 버리는 성질이 있다. 즉, 창문이 알아서 금속 거울처럼 변해 뜨거운 태양열을 밖으로 튕겨내어 실내를 시원하게 지켜준다. 반대로 추운 겨울이나 밤이 되어 창문이 식으면 다시 부도체(유리)로 돌아와 따뜻한 햇빛을 집 안으로 온전히 통과시킨다. 전기를 쓸 필요도, 블라인드를 내릴 필요도 없이 스스로 주변 온도에 반응하여 에너지를 통제하는 완벽한 스마트 소재의 탄생이다.

뇌를 모방한 칩, 뉴로모픽 컴퓨터의 심장

상전이 물질의 진정한 위력은 온도가 아니라 미세한 '전압'으로도 똑같이 스위치를 껐다 켤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현재의 실리콘 반도체는 0과 1을 처리할 때 누설 전류가 발생하고 전력 소모가 엄청나다. 하지만 모트 절연체를 반도체 대신 칩으로 만들면, 평소에는 완벽한 부도체 상태라 전기를 단 한 방울도 낭비하지 않다가, 신호가 들어오는 그 찰나의 순간에만 금속으로 변해 정보를 쏘아 보내고 다시 스위치를 꺼버린다. 이는 인체 뇌 속의 신경 세포(시냅스)가 전기 자극이 임계점을 넘을 때만 '찌릿' 하고 신호를 보내는 스파이킹(Spiking) 원리와 소름 돋도록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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