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생명

생체조직 투명화를 통한 조직의 관찰

불투명한 쥐의 뇌를 투명한 유리처럼 만들어 내부의 신경망을 자르지 않고 통째로 3D 관찰하는 생체조직 투명화 기술의 원리를 살펴본다.

편집부 · 2025년 9월 20일 · 읽는 데 4분

과학 생물학, 다채로운 네온 신경 경로가 내부에 보이는 페트리 접시에 놓인 완전히 투명하게 빛나는 쥐의 뇌
과학 생물학, 다채로운 네온 신경 경로가 내부에 보이는 페트리 접시에 놓인 완전히 투명하게 빛나는 쥐의 뇌

우리 몸속의 뇌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을 때, 생물학자들은 전통적으로 아주 잔인하고도 노가다에 가까운 방법을 썼다. 쥐의 뇌를 꺼내 꽁꽁 얼린 다음, 햄을 써는 기계(마이크로톰)를 이용해 뇌 전체를 머리카락 두께보다 얇은 수천 장의 슬라이스로 썰어낸다. 그리고 얇은 단면들을 일일이 현미경으로 찍은 뒤, 컴퓨터에서 수천 장의 사진을 쌓아 올려 다시 3D로 복원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시간이 수개월씩 걸리는 것은 물론이고, 칼로 뇌를 썰어내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신경 세포(뉴런)의 기다란 연결망들이 뚝뚝 끊어져 버리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이 답답한 상황을 지켜보던 과학자들은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뇌를 자르지 말고, 뇌 전체를 마치 유리구슬처럼 '투명하게' 만들어버리면 어떨까? 겉에서 돋보기를 들여다보듯 뇌 속의 신경망을 3차원으로 한눈에 볼 수 있지 않을까?" 꿈만 같았던 이 상상력은 2010년대 혁신적인 화학 기술을 만나 '생체조직 투명화(Tissue Clearing)'라는 기적으로 현실이 되었다. 뇌를 해체하지 않고 투명 인간처럼 만들어버리는 그 기괴한 생화학적 원리를 파헤쳐 보자.

불투명함의 원흉, 지질(Lipid)을 제거하라

우리의 피부나 뇌가 유리처럼 투명하지 않고 뿌옇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빛이 통과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빛이 세포를 통과할 때마다 이리저리 꺾이고 튕겨 나가는 '산란(Scattering)' 현상 때문이다. 우리 몸의 70%는 물로 채워져 있지만, 세포벽이나 뇌의 신경을 감싸고 있는 지방 성분인 '지질(Lipid)'은 물과 빛을 굴절시키는 정도(굴절률)가 완전히 다르다. 빛이 물과 지질을 번갈아 통과할 때마다 굴절률 차이 때문에 경로가 꺾이면서 뇌가 뽀얀 우윳빛으로 불투명하게 보이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뇌를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 아주 무식하고 직관적인 해결책을 내놓았다. 빛을 산란시키는 원흉인 '지질(지방)'을 뇌에서 통째로 씻어내어 뽑아버리기로 한 것이다.

하이드로겔의 기적, 클라리티(CLARITY) 기술

문제는 뇌에서 지질을 빼버리면 단백질과 신경망들이 뼈대 없이 무너져 내려 뇌 자체가 액체처럼 붕괴해 버린다는 점이다. 2013년 스탠퍼드 대학교의 칼 디서로스(Karl Deisseroth) 연구팀은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가 막힌 마술을 부렸다. '클라리티(CLARITY)'라 불리는 이 기술은, 먼저 쥐의 뇌 속에 아크릴아마이드라는 화학 물질(하이드로겔)을 흠뻑 적셔 넣고 가열한다. 그러면 이 물질이 뇌 속에서 단백질, DNA와 단단하게 엉겨 붙으며 투명하고 질긴 '플라스틱 그물망(지지대)'을 형성한다. 신기하게도 이 겔은 지질(지방)하고는 결합하지 않는다. 뼈대가 완성된 후, 세제(SDS) 성분을 넣고 강한 전기를 흘려보내면 겔에 묶이지 않은 지질 성분만 쏙 빠져나와 씻겨 내려간다. 결과는 경이로웠다. 며칠 뒤, 쥐의 뇌는 모양과 크기, 심지어 뇌 속의 뉴런 위치까지 원래 상태를 완벽하게 유지한 채, 마치 젤리나 유리구슬처럼 속이 훤히 비치는 완벽한 투명 뇌로 변신했다. 의학 다이어그램, 조직 블록에서 지질이 추출되어 투명한 하이드로겔로 대체되는 화학 공정을 보여주는 다이어그램

광학 현미경으로 보는 뇌 속 우주 비행

투명해진 뇌의 진가는 여기에 형광 물질을 입혔을 때 폭발한다. 과학자들이 뇌의 특정 부위(예: 도파민 신경세포)에만 달라붙어 빨간색 빛을 내는 형광 항체를 투명 뇌에 집어넣는다. 예전 같으면 뇌를 수천 장으로 잘라야 했지만, 이제는 자르지 않고 통째로 현미경(단면조명 현미경 등) 아래에 올려놓고 레이저를 쏘기만 하면 된다. 뇌가 유리처럼 투명하기 때문에 레이저 빛이 뇌의 중심부까지 아무 방해 없이 뚫고 들어간다. 뇌의 겉면부터 깊숙한 중심부까지, 빨간색으로 물든 신경 세포가 어떻게 가지를 뻗어 수만 개의 다른 신경과 시냅스를 맺고 있는지 3차원 지도로 완벽하게 그려낼 수 있다. 마치 구글 어스(Google Earth)로 지구 밖에서 도시 전체를 조망하다가, 순식간에 줌 인(Zoom-in)하여 뒷골목의 가로등 하나까지 들여다보는 엄청난 해상도의 우주 비행이 뇌 속에서 가능해진 것이다.

알츠하이머와 파킨슨병의 비밀을 풀다

조직 투명화 기술은 뇌과학뿐만 아니라 질병 연구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꿨다.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의 뇌 속에는 특정 독성 단백질(아밀로이드 베타 등)이 엉겨 붙어 있다. 예전에는 잘라낸 단면만 보았기 때문에 이 찌꺼기들이 뇌 전체에 어떻게 퍼져 나가는지 입체적인 경로를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투명 뇌 기술을 이용하면, 병이 진행됨에 따라 독성 단백질이 어느 신경망 고속도로를 타고 뇌 전체로 번져나가는지, 그리고 우울증 약이나 치매 치료제가 정확히 어느 부위의 뇌세포를 활성화시키는지 통째로 추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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