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아 쓰는 마스크 나노 필터의 진실
KF94 마스크의 정전기 필터 원리와, 이를 대체하기 위해 등장한 세탁 가능한 '나노 필터' 마스크의 기술적 한계 및 안정성 논란을 짚어본다.
편집부 · 2022년 2월 13일 · 읽는 데 4분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휩쓸던 시절, 마스크는 돈을 주고도 구하기 힘든 생명줄이었다. 약국마다 마스크를 사려는 줄이 끝없이 이어졌고, 한 번 쓰고 버려야 하는 마스크 쓰레기 문제는 심각한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떠올랐다. 바로 그때, 마치 구세주처럼 등장한 아이템이 있었다. "수십 번 빨아 써도 필터 성능이 99% 유지된다"고 광고하며 홈쇼핑과 온라인 쇼핑몰을 휩쓸었던 '나노 필터(Nano Filter) 마스크'다. 기존의 마스크들은 물에 닿는 순간 숨구멍이 막히고 필터가 망가져 버리는데, 도대체 나노 필터는 어떤 마법을 부렸기에 물빨래를 견뎌낼 수 있다는 것일까? 이 놀라운 신소재는 엄청난 화제를 모았지만, 머지않아 식약처의 허가 문제와 인체 유해성 논란이라는 암초에 부딪히며 거센 역풍을 맞았다. 마스크 대란 속에서 혁신과 사기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었던 나노 필터 마스크의 물리적 원리와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쳐 보자.
정전기로 바이러스를 낚아채는 MB 필터
우리가 안심하고 썼던 KF94나 N95 마스크의 핵심은 폴리프로필렌 플라스틱을 솜사탕처럼 가느다랗게 뽑아내어 뭉쳐놓은 '멜트블로운(Melt-blown, MB) 필터'다. 이 필터의 그물망 구멍 크기는 약 1~10마이크로미터로, 0.1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코로나 바이러스를 물리적인 크기만으로는 완벽하게 걸러낼 수 없다. 그런데도 어떻게 방역이 가능했을까? 비밀은 '정전기'에 있다. MB 필터 원단에는 제조 과정에서 수만 볼트의 고압 전기를 가해 영구적인 정전기(Electret)를 흠뻑 입혀 놓는다. 마스크를 통과하던 미세한 바이러스나 먼지가 이 그물망 근처를 스쳐 지나가면, 털옷에 머리카락이 달라붙듯 필터의 강력한 정전기에 이끌려 철썩 달라붙어 버린다. 촘촘하지 않은 성긴 그물망 덕분에 사람이 숨쉬기는 아주 편하면서도, 미세 입자들은 정전기 자석으로 완벽하게 포획하는 기가 막힌 원리다. 하지만 이 완벽한 필터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바로 '물'과 '습기'다. 세탁을 하거나 심지어 입김의 수분이 오래 닿기만 해도 필터에 충전된 정전기가 공기 중으로 방전되어 버려, 바이러스를 잡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해 버리는 것이다.
물리적 철망, 나노 필터의 등장
물에 닿으면 죽어버리는 정전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전기 방사(Electrospinning)'라는 첨단 기술을 동원했다. 플라스틱 용액에 고압 전기를 쏘아 거미줄보다 수천 배 더 가는 0.1마이크로미터(100나노미터) 굵기의 초극세사 실을 뽑아내어 겹겹이 쌓아 올린 것이 바로 '나노 필터'다. 이 나노 필터는 MB 필터처럼 정전기의 마법에 의존하지 않는다. 실의 굵기 자체가 바이러스와 비슷할 정도로 얇고, 얽혀 있는 그물망의 구멍(기공) 크기도 0.1마이크로미터 수준으로 촘촘해서, 말 그대로 미세 먼지나 바이러스가 그물 구멍에 끼어서 물리적으로 통과하지 못하게 꽉 막아버린다. 촘촘한 철조망으로 모기를 막는 것과 같은 무식하고 확실한 원리다. 정전기를 쓰지 않기 때문에 물이나 에탄올에 푹 담가서 박박 문질러 빨아도 물리적인 그물망 자체만 찢어지지 않는다면 필터의 방어막은 그대로 유지된다. "빨아 쓰는 마스크"의 탄생이었다.
숨 막히는 딜레마와 성능의 과장
하지만 나노 필터 마스크는 상용화 과정에서 거대한 기술적 딜레마에 빠졌다. 바이러스가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그물망을 촘촘하게 짜버리면, 당연히 공기도 잘 통과하지 못해 사람이 숨을 쉴 수가 없다. 마스크를 썼을 때 공기가 잘 통하는 정도를 '차압(Pressure drop)'이라고 하는데, KF94 마스크는 정전기 덕분에 구멍이 널찍해서 차압이 낮아 숨쉬기 편하지만, 물리적으로 구멍을 좁혀버린 나노 필터는 조금만 움직여도 헐떡거릴 만큼 호흡이 곤란해졌다. 제조사들은 숨을 쉽게 쉬게 하려고 나노 필터의 두께를 아주 얇게 만들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세탁할 때마다 이 얇은 나노 섬유막이 쉽게 찢어지거나 구멍이 뚫려버려 필터로서의 기능이 망가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수십 번 빨아 쓰는 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구멍이 숭숭 뚫려 바이러스가 그대로 통과하는 '허울뿐인 마스크'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인체 유해성 논란, 폐로 들어간 나노 섬유
더욱 치명적인 문제는 바로 '인체 유해성'이었다. 나노 필터를 만드는 전기 방사 과정에서 맹독성 유기 용매(DMF 등)가 사용되는데, 이 독성 물질이 필터에 미세하게 잔류하여 마스크를 쓴 사람의 폐로 들이마셔질 수 있다는 무서운 경고가 제기되었다. 또한, 나노 섬유 가닥 자체가 너무 얇고 미세해서, 세탁 과정이나 숨을 강하게 쉴 때 필터에서 떨어져 나온 미세 플라스틱 가닥(나노 입자)이 호흡기를 타고 폐포 깊숙이 침투할 수 있다는 독성학적 우려도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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