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지구과학

빛과 그림자 항상 함께는 아니다

그림자 한가운데에 빛나는 점이 나타나는 기묘한 현상인 '아라고의 점(푸아송의 점)'을 통해 빛의 파동성을 입증한 물리학의 극적인 역사를 살펴본다.

편집부 · 2024년 8월 6일 · 읽는 데 4분

물리학 실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지만 그림자의 완벽하게 중앙에 빛나는 밝은 점이 있는 단단한 원형 물체
물리학 실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지만 그림자의 완벽하게 중앙에 빛나는 밝은 점이 있는 단단한 원형 물체

빛이 있는 곳에 그림자가 있다. 불이 켜진 방에서 동그란 동전을 벽 앞에 놓으면 당연히 벽에는 동그랗고 새까만 그림자가 생긴다. 빛은 항상 직선으로만 날아가기 때문에(직진성), 동전에 가로막힌 곳은 영원히 어둠에 갇힌다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그런데 이 상식을 산산조각 내는 끔찍하게 기묘한 물리 현상이 있다. 만약 아주 완벽하게 동그란 쇠구슬을 핀에 꽂아두고 멀리서 단색광(레이저 같은 맑은 빛)을 비춘 뒤 그 그림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까만 그림자의 정중앙에 아주 작고 밝게 빛나는 '눈동자 같은 하얀 점'이 선명하게 맺힌다. 가려진 그림자 한가운데에 어떻게 빛이 생겨날 수 있을까? 귀신이 곡할 노릇 같은 이 기괴한 현상은, 빛이 입자라고 굳게 믿었던 19세기 뉴턴 학파 물리학자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고 빛이 물결처럼 굽이치는 '파동(Wave)'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입증한 가장 극적인 증거다. 과학사에서 가장 우스꽝스럽고도 아름다운 반전 드라마로 손꼽히는 '아라고의 점(Arago's Spot)' 혹은 '푸아송의 점(Poisson's Spot)'에 얽힌 파동 광학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뉴턴의 입자설 vs 하위헌스의 파동설

18세기까지만 해도 빛의 정체를 둘러싼 물리학계의 지배적인 의견은 '입자설'이었다.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이라는 너무나도 거대한 천재가 "빛은 직진하는 아주 작은 알갱이들의 총알"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뉴턴의 후광에 짓눌려 빛이 물결처럼 퍼져나가는 '파동'이라는 크리스티안 하위헌스의 주장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만약 빛이 파동이라면, 강물이 바위를 만나면 부딪혀서 돌아가듯(회절 현상) 빛도 장애물을 만나면 휘어져서 그림자 뒤쪽까지 환하게 비춰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림자의 경계선이 칼로 자른 듯 선명하다는 것이 뉴턴 학파의 가장 강력한 논리였다. 이 입자설의 독재는 무려 100년 넘게 이어졌다. 그러다 1818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서 빛의 본질을 밝히는 사람에게 상금을 주겠다는 공개 현상 공모전을 열었다. 당대 최고의 학자들은 당연히 뉴턴의 입자설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논문이 우승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심사위원들 앞에 오귀스탱 장 프레넬(Augustin-Jean Fresnel)이라는 젊고 무명의 토목 공학자가 빛이 파동이라는 기괴한 수학적 수식을 한가득 들고 나타나면서 파란이 일기 시작했다.

푸아송의 비웃음, 기괴한 예측

프레넬의 논문은 빛이 물결파처럼 퍼져나가며 장애물을 만났을 때 꺾이고(회절), 서로의 물결이 겹쳐지면서 보강되거나 상쇄(간섭)된다는 사실을 미적분을 동원해 소름 돋게 정확한 수식으로 증명해 냈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시메옹 드니 푸아송(Siméon Denis Poisson)은 열렬한 뉴턴의 추종자(입자설 신봉자)였다. 푸아송은 프레넬의 파동 이론을 짓밟기 위해 그의 수식을 극한까지 밀어붙여 보았다. 그리고 프레넬의 방정식에서 수학적으로 너무나 어이없고 치명적인 모순 하나를 찾아냈다. "프레넬, 자네의 수식대로 빛이 파동이라면, 완벽하게 둥근 원판 뒤에 생기는 그림자를 보게나. 원판 가장자리에서 꺾여 들어온 빛의 파동들이 그림자 한가운데서 완벽하게 겹쳐지면서(보강 간섭), 새까만 그림자 정중앙에 세상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점'이 생겨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네! 그림자 한가운데 빛이 모인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가 어디 있나?" 푸아송은 프레넬의 이론이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황당한 결과를 낳는다며 논문을 조롱하고 휴지통에 던져버리려 했다. 간섭 패턴을 만들기 위해 구형 물체 주위로 휘어지고 감싸는 레이저 광선, 추상적 시각화

아라고의 점, 그림자 속에서 빛난 기적

하지만 공모전의 심사위원장이었던 프랑수아 아라고(François Arago)의 생각은 달랐다. 진정한 과학자라면 이론이 황당해 보이더라도 반드시 실험으로 직접 확인해 보아야 한다고 믿었다. 아라고는 직접 깜깜한 실험실로 들어가, 아주 작은 원형 금속판을 실에 매달아 놓고 한 줄기 빛을 비춘 뒤 돋보기를 통해 그림자의 정중앙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그리고 아라고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푸아송이 불가능하다며 조롱했던 바로 그 '황당한 예측'이 실험실에서 완벽하게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원판 그림자의 정중앙에, 마치 누군가 바늘구멍을 뚫어놓은 것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둥근 점 하나가 선명하게 맺혀 있었다. 원형 장애물의 모든 가장자리를 스치며 꺾여 들어온 빛의 파동들이, 가장자리로부터 정확히 같은 거리에 있는 그림자의 정중앙에 정확히 똑같은 위상(타이밍)으로 모이면서 파도가 증폭되는 '보강 간섭(Constructive Interference)'을 일으킨 것이다. 반면 정중앙을 벗어난 그림자 주변부에서는 파동이 엇갈려(상쇄 간섭) 다시 새까맣게 변했다. 완벽한 기하학과 파동이 만들어낸 마술이었다.

뉴턴의 몰락과 파동 광학의 승리

아라고가 이 충격적인 실험 결과를 학회에 발표하자,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침묵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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