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릭스 라우셔 반응 briggs lausher reation
용액의 색깔이 스스로 계속해서 바뀌는 기묘한 화학 진동 반응인 '브릭스-라우셔 반응'의 메커니즘과 비평형 열역학의 아름다움을 소개한다.
편집부 · 2024년 8월 3일 · 읽는 데 4분
마술사가 세 개의 투명한 유리병에 담긴 평범한 액체를 하나의 큰 비커에 섞는다. 처음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던 투명한 액체가 갑자기 황금빛 호박색으로 변하더니, 1초도 안 되어 잉크처럼 짙은 파란색(남색)으로 확 바뀐다. 관객이 놀라기도 전에, 파란색 용액은 다시 투명하게 탈색되고, 호박색을 거쳐 또다시 짙은 파란색으로 변하는 기괴한 현상을 수십 번이나 무한 반복한다. 이것은 마술쇼의 눈속임이 아니다. 화학 실험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브릭스-라우셔 반응(Briggs-Rauscher Reaction)'이라는 유명한 화학 실험이다.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화학 반응은 A와 B가 섞여 C가 되면 거기서 멈추어버린다(평형 상태). 그러나 이 반응은 용액 스스로가 시계추처럼 진동하며 색깔을 바꾼다. 오랫동안 화학자들은 이런 '화학적 진동(Chemical Oscillation)'이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증가)에 어긋나는 불가능한 마법이라며 부정해 왔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스스로 박동하는 이 기묘한 화학 반응의 비밀과, 그것이 증명해 낸 '비평형 열역학'의 우아한 세계를 파헤쳐 보자.
화학 시계의 발견, B-Z 반응에서 출발하다
화학 반응이 시계처럼 진동할 수 있다는 사실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50년대 러시아의 화학자 보리스 벨루소프(Boris Belousov)에 의해서였다. 그는 생명체의 대사 과정을 모방한 혼합 용액을 젓다가 용액의 색이 투명과 노란색을 오가며 계속 바뀌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 놀라운 현상을 논문으로 제출했지만, 당시 화학 학계는 "열역학 제2법칙에 위배되는 헛소리"라며 게재를 거부했다. 한 번 섞인 물감이 다시 분리될 수 없듯, 화학 반응이 주기적으로 원래 상태로 되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수십 년 뒤 자보틴스키라는 학자가 이를 다듬어 마침내 학계의 인정을 받았고(B-Z 반응), 1973년 미국의 토머스 브릭스와 워런 라우셔가 이 반응을 개량하여 시각적으로 훨씬 더 극적이고 선명하게 색이 변하는 '브릭스-라우셔 반응'을 개발해 냈다. 과산화수소, 요오드산염, 말론산, 망간 촉매, 그리고 녹말 지시약이 섞인 이 마법의 용액은 화학이 단순히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멈춰진 죽음의 상태가 아님을 전 세계 화학자들의 눈앞에서 증명해 보였다.
라디칼과 비라디칼의 숨 막히는 줄다리기
용액의 색깔이 계속 바뀌는 이유는 비커 안에서 두 가지 전혀 다른 성격의 화학 반응 경로(경로 A와 경로 B)가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숨바꼭질과 줄다리기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요오드(I) 원자의 농도 변화다. 용액 안에서는 매우 빠르고 공격적인 '자유 라디칼(쌍을 이루지 못한 전자를 가진 분자)'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하는 반응(A)과, 비교적 느리고 안정한 비라디칼 반응(B)이 동시에 일어난다. 처음에는 특정 이온의 농도가 낮아 느린 반응(B)이 진행되면서 요오드 분자(I2)가 천천히 만들어지고 용액이 '호박색'을 띤다. 그러다 요오드 분자의 농도가 어느 임계점을 넘으면, 갑자기 라디칼들이 폭주하는 고속 반응(A) 스위치가 켜진다. 이때 엄청난 양의 요오드 이온 덩어리가 생성되면서 녹말과 결합하여 순식간에 짙은 '파란색(남색)'으로 확 변한다. 파란색 상태에서 반응물(말론산)이 요오드를 몽땅 집어삼키고 나면 다시 농도가 떨어져 고속 반응(A)이 꺼지고 느린 반응(B)이 시작되며 용액은 '투명'해진다. 이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가 반응물이 모두 고갈될 때까지 몇 분 동안 수십 차례 반복되는 것이다.
비평형 열역학, 생명의 박동을 설명하다
화학자들을 멘붕에 빠뜨렸던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증가)과의 모순은 어떻게 된 것일까? 답은 일리야 프리고진(Ilya Prigogine)이 정립한 '비평형 열역학(Non-equilibrium Thermodynamics)'에 있었다. 열역학 제2법칙은 외부와 에너지를 주고받지 않는 '닫힌계'에서 최종적으로 멈추어버린 '평형 상태'를 설명하는 법칙이다. 하지만 브릭스-라우셔 용액이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에너지가 계속 흘러가며 평형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열린계(비평형 상태)'에서는 엔트로피가 전체적으로는 증가하더라도 국소적으로는 이처럼 고도로 규칙적이고 질서 정연한 진동 구조(소산 구조, Dissipative structure)가 스스로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 수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프리고진은 이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브릭스-라우셔 반응은 생명이 없는 차가운 화학 물질들이 섞였을 뿐인데도, 심장이 규칙적으로 박동하거나 세포 분열이 주기를 띠는 것과 완벽하게 똑같은 화학적 시계(Oscillator)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놀라운 시각적 증거다.
자연계에 숨어 있는 진동 반응들
브릭스-라우셔 반응의 원리는 비커 속의 마술을 넘어 자연과 우주를 이해하는 거대한 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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