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츠만 통계역학
원자의 존재를 통계학과 확률로 입증하며 무질서도(엔트로피)의 물리학적 본질을 규명한 비운의 천재 루트비히 볼츠만의 삶과 업적을 조명한다.
편집부 · 2022년 5월 13일 · 읽는 데 4분
시간은 왜 항상 과거에서 미래로만 흐를까? 왜 뜨거운 커피는 가만히 두면 차갑게 식어버리고, 한 번 깨진 유리잔은 다시 저절로 원래 모양으로 조립되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 일방통행의 자연 법칙을 설명하는 물리학의 기둥이 바로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다. 19세기 후반, 오스트리아의 천재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은 이 거시적인 열 현상을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적인 '원자'들의 무작위한 움직임과 '통계적 확률'로 완벽하게 설명해 냈다. 그러나 그의 너무나 앞서간 통찰력은 당시 주류 과학계의 거센 비난과 조롱에 직면했다. 원자의 존재조차 증명되지 않았던 시절, "모든 물질은 입자(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세상이 무질서해지는 것은 그저 확률적으로 우연일 뿐"이라는 그의 주장은 학계의 철학적 신념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짓이었기 때문이다. 평생을 외로운 논쟁 속에서 고통받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천재 볼츠만, 그리고 그가 남긴 가장 아름답고 슬픈 방정식 S=k log W가 들려주는 통계역학의 웅장한 세계를 만나보자.
기체 분자 운동론과 확률의 도입
볼츠만이 활동하던 19세기 말, 물리학계의 지배적인 분위기는 열(Heat)을 눈에 보이지 않는 유체(칼로릭)처럼 흐르는 에너지 덩어리로 보는 것이었다. 원자나 분자의 존재는 화학자들이 계산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도입한 상상 속의 개념일 뿐, 실제한다고 믿는 주류 물리학자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볼츠만은 달랐다. 그는 컵 속에 담긴 기체나 액체가 수억 개의 아주 작고 당구공 같은 입자(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뉴턴의 역학을 이 수많은 미시 입자들에 적용하려 했으나, 10의 23제곱 개가 넘는 어마어마한 입자들의 궤적을 일일이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볼츠만은 기발하게도 '통계학과 확률'을 물리학에 끌어들였다. 개별 분자가 어디로 튈지는 알 수 없지만, 전체 분자들의 속도와 에너지가 어떻게 분포하는지는 통계적으로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거시적인 온도와 압력을 미시적인 분자들의 평균적인 운동 에너지로 설명하는 '기체 분자 운동론'과 '통계역학(Statistical Mechanics)'의 위대한 탄생이었다.
엔트로피의 진짜 의미, S = k log W
볼츠만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열역학 제2법칙의 핵심 개념인 '엔트로피(Entropy)'의 정체를 완벽하게 규명한 것이다. 클라우지우스가 처음 제안한 엔트로피는 단순히 열이 이동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모호한 수학적 값이었다. 하지만 볼츠만은 통계역학을 이용해 엔트로피의 정체가 바로 물질을 이루는 분자들이 배열될 수 있는 '경우의 수(무질서도)'라고 재정의했다. 방 안에 모여 있던 향수 냄새가 방 전체로 퍼져나가는 것은, 향수 분자들이 한구석에 예쁘게 뭉쳐 있을 확률(경우의 수)보다 방 전체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을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자연은 언제나 확률이 더 높은 상태, 즉 무질서한 상태로 이동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것이 열역학 제2법칙의 통계적 본질이라는 것이다. 볼츠만은 이 위대한 깨달음을 아주 단순한 수식 하나로 요약했다. 엔트로피(S)는 분자가 가질 수 있는 경우의 수(W)의 로그 값에 비례하며, k는 볼츠만 상수라는 뜻의 'S = k log W'다. 열역학과 통계학을 완벽하게 이어준 물리학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묘비명이다.
원소론과 에른스트 마흐의 공격
하지만 볼츠만의 통계역학은 당시 주류 학계의 거물이었던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와 빌헬름 오스트발트 같은 경험주의 철학자들에게 철저히 짓밟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를 가정하는 것은 형이상학적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마흐는 학회에서 볼츠만이 발표할 때마다 "당신은 원자를 본 적이 있소?"라며 면박을 주었고, 에너지야말로 우주의 유일한 근본 실체라는 에너지론(Energetics)으로 볼츠만을 사방에서 압박했다. 더욱이 통계역학의 관점에서는 아주 희박한 확률이긴 하지만 깨진 컵이 다시 붙거나(엔트로피 감소) 열이 차가운 곳에서 뜨거운 곳으로 흐를 가능성(푸앵카레 재귀 정리)이 존재한다는 점 때문에 끝없는 철학적 논쟁에 시달려야 했다. 볼츠만은 자신의 이론을 방어하기 위해 홀로 수많은 논문과 강연을 이어갔지만, 끊임없는 학계의 조롱과 외면은 그의 섬세한 신경증을 극도로 악화시켰다.
비극적인 최후와 뒤늦은 승리
우울증과 조울증에 시달리며 시력이 거의 멀어버린 볼츠만은 1906년 여름,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떠난 이탈리아 두이노의 한 호텔 방에서 62세의 나이로 스스로 목을 매어 생을 마감했다. 평생을 바친 자신의 원자론과 통계역학이 영원히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깊은 절망감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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