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백신개발과 소통협력 그리고 4차 산업혁명시대

COVID-19 팬데믹 당시 1년 만에 기적적으로 개발된 백신의 성공 요인을 4차 산업혁명 기술과 글로벌 소통 네트워크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편집부 · 2024년 3월 11일 · 읽는 데 4분

디지털 이진 코드 및 글로벌 네트워크 라인과 융합되는 빛나는 DNA 가닥, 첨단 의료 개념
디지털 이진 코드 및 글로벌 네트워크 라인과 융합되는 빛나는 DNA 가닥, 첨단 의료 개념

역사적으로 새로운 전염병을 막기 위한 백신을 개발하는 데는 최소 10년 이상의 길고 지루한 시간이 필요했다. 병원체를 배양하고 독성을 약화시킨 뒤, 임상 시험을 거쳐 공장을 짓고 대량 생산을 하기까지 넘어야 할 규제와 기술적 장벽이 산적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9년 말 COVID-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집어삼켰을 때, 인류는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는 유례없는 짧은 시간 안에 고효율의 백신을 기적처럼 쏟아냈다. 생명공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취 중 하나로 꼽히는 이 기적의 속도전은 단지 생물학자들의 밤샘 연구만으로 이룩된 것이 아니다. 백신 개발의 전 과정을 혁신적으로 압축할 수 있었던 진짜 비결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꽃이라 불리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메신저 RNA(mRNA) 플랫폼 기술의 결합, 그리고 전 세계 과학자들과 정부가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공유했던 거대한 '초연결(Hyper-connectivity) 소통망'에 있었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확산 속도를 압도했던 인류의 디지털 연대와 첨단 생물학의 융합 시너지가 어떻게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는지 그 혁신의 발자취를 추적해 보자.

데이터 공유의 기적, 바이러스 유전자 해독

백신 개발의 첫 단추는 적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바이러스를 직접 구해서 실험실로 가져와 배양해야만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지만, COVID-19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2020년 1월 초, 중국 우한의 연구진은 원인 모를 폐렴 환자에게서 채취한 바이러스의 유전체 서열(게놈)을 해독하자마자 그 방대한 디지털 데이터를 국제 유전자 염기서열 공유 데이터베이스(GISAID)에 실시간으로 업로드했다. 이 '소통과 협력'의 결단은 전 세계의 백신 시계를 획기적으로 앞당겼다. 미국과 독일의 과학자들은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택배로 받을 필요 없이, 인터넷으로 다운로드한 3만 개의 염기서열 데이터(문자열 A, T, G, C) 뭉치만 보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돌려 불과 며칠 만에 바이러스 표면의 핵심 무기인 '스파이크 단백질'의 설계도를 그려냈다. 물리적인 실험실의 국경이 허물어지고, 전 세계의 서버가 하나의 거대한 가상 연구소로 연결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데이터 개방성이 만들어낸 첫 번째 기적이었다.

플러그 앤 플레이, mRNA 플랫폼 혁명

적의 설계도를 파악했다 하더라도 전통적인 방식(죽은 바이러스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백신을 만들려면 수개월의 배양 시간이 필요했다. 여기서 게임의 룰을 완전히 바꿔버린 것이 'mRNA 백신'이라는 신기술이다. 모더나나 화이자-바이오엔테크가 채택한 이 방식은 바이러스 자체를 몸에 넣는 것이 아니다.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드는 '설계도(mRNA)'만을 복사하여 인간의 세포에 배달해 주고, 세포가 스스로 그 단백질을 만들어내면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이를 연습용 타겟으로 삼아 항체를 훈련시키는 획기적인 방식이다. mRNA 플랫폼은 컴퓨터의 USB 포트에 메모리를 꽂듯(Plug and Play), 새로운 바이러스의 유전자 코드만 입력하면 단 며칠 만에 백신 후보 물질을 척척 찍어낼 수 있는 고도의 디지털화된 생명공학 시스템이다. 오랫동안 암 치료제를 연구하며 이 플랫폼의 기초를 닦아놓았던 카탈린 카리코 박사 등 수많은 연구자들의 끈질긴 협력이 없었다면, 이 기술은 제때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수백만 가지의 단백질 구조 조합을 단숨에 시뮬레이션하여 가장 부작용이 적고 효과적인 mRNA 서열을 골라내며 시간을 기하급수적으로 단축시켰다. 미래형 실험실에서 홀로그램 mRNA 분자를 두고 협력하는 다양한 국적의 과학자들

빅데이터와 병렬 임상 시험의 시너지

백신 후보 물질이 완성된 후 겪어야 하는 가장 길고 고통스러운 과정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3단계의 임상 시험이다. 보통 각 단계가 끝난 후 데이터를 분석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만 수년이 걸리지만, 이번에는 정부 규제 기관과 제약사들이 클라우드 기반의 빅데이터 플랫폼 위에서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1, 2, 3상 임상 시험을 거의 동시에 병렬로 진행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인공지능 모델을 활용하여 감염률이 가장 높게 치솟을 지역과 연령대를 정확히 예측해 낸 뒤, 해당 지역의 병원에 환자들을 집중적으로 배치하여 백신의 효능을 테스트하는 '스마트 임상' 기술이 도입되었다. 전 세계 수만 명의 자원자 데이터가 스마트 워치와 디지털 헬스케어 앱을 통해 모니터링되고 중앙 서버로 집결되어 부작용 여부가 실시간으로 검증되었다. 거대한 컴퓨팅 파워가 10년의 시간을 10개월로 압축시킨 것이다. 백신의 승인과 동시에 수억 병의 백신을 생산하는 대규모 공장 자동화 라인 역시 사이버 물리 시스템(CPS)이 통제하는 스마트 팩토리의 위력이 돋보인 결과물이었다.

위기 속에서 싹튼 불평등과 소통의 숙제

기술적 승리 이면에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짊어져야 할 어두운 그림자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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