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린탄 지옥을 만들다
인과 산소의 맹렬한 연소 반응을 이용한 잔혹한 무기 '백린탄'의 화학적 원리와, 이것이 인체에 미치는 끔찍한 영향 및 국제법적 논란을 분석한다.
편집부 · 2023년 4월 20일 · 읽는 데 4분
전쟁의 역사는 인류가 과학을 얼마나 잔혹하게 이용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거대한 박물관과 같다. 그중에서도 현대전에서 가장 악명 높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 무기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백린탄(White Phosphorus Munitions)'이다. 하늘에서 터지며 하얀 불꽃의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시각적 연출과는 정반대로, 이 무기는 그 아래에 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문자 그대로 지옥을 선사한다. 피부에 닿는 순간 뼈까지 파고들며 타들어 가는 끔찍한 화상과 짙은 유독성 연기를 뿜어내는 백린탄은, 특정 화학 원소의 극단적인 반응성을 무기화한 가장 교활한 발명품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가자 지구 분쟁 등 참혹한 전장마다 '악마의 무기'가 사용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지만, 강대국들은 조명탄이나 연막탄이라는 핑계로 합법의 그물망을 교묘히 피해 가며 사용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인간의 살갗을 녹이는 잔인한 연소 반응의 배후에 숨겨진 인(Phosphorus)의 화학적 성질과, 이를 둘러싼 국제법의 위선적인 딜레마를 파헤쳐 보자. 화학 기호 P4가 만들어내는 뜨겁고 고통스러운 죽음의 메커니즘이다.
어둠 속의 빛, 인(P)의 두 얼굴
백린탄의 핵심 물질인 '백린(White Phosphorus)'은 인(P)이라는 원소의 한 형태(동소체)다. 1669년 독일의 연금술사 헤니히 브란트가 사람의 오줌을 졸여서 황금을 만들려다 우연히 발견한 인은, 라틴어로 '빛을 가져오는 자(Lucifer)'라는 뜻을 가질 정도로 어둠 속에서 스스로 창백한 빛을 내는 신비로운 물질이었다. 인은 우리 몸의 DNA 뼈대를 구성하고 뼈와 치아를 튼튼하게 만드는 생명의 필수 원소이자, 비료의 핵심 성분으로 인류를 식량난에서 구원한 고마운 물질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 원자 4개가 정사면체 구조로 뭉쳐 있는 백린(P4) 상태일 때는 성질이 극단적으로 흉폭해진다. 정사면체 구조 안에서 결합 각도가 좁아 억지로 비틀려 있기 때문에 결합 에너지가 매우 불안정하여 금방이라도 폭발적으로 쪼개지려 한다. 이 때문에 백린은 섭씨 30도 정도의 상온에서 공기 중의 산소와 접촉하기만 하면 스스로 불이 붙어버리는 강력한 '자연 발화성'을 띠게 된다. 이 통제하기 힘든 불덩어리를 다루기 위해 과거에는 물속에 보관했지만, 군사 전략가들은 이 맹렬한 반응성을 눈여겨보고 무서운 화학 무기로 탈바꿈시켰다.
뼈까지 태우는 끈질긴 화학 반응
포탄에 담겨 공중에서 터진 백린 파편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해 섭씨 800도에서 최대 2,700도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고열을 뿜어낸다. 폭탄의 파편이 인간의 피부에 달라붙는 순간, 비극이 시작된다. 백린은 물을 들이부어도 쉽게 꺼지지 않는다. 산소를 차단하지 않는 이상 피부를 뚫고 피하 지방층과 근육을 거쳐 뼈가 드러날 때까지 타들어 가기 때문이다. 피부에 불이 붙어 당황하여 물을 끼얹으면, 백린이 물과 반응하여 끓어오르면서 화상을 오히려 더 넓게 번지게 만들거나 파편이 피부 깊숙이 파고들게 만드는 참사를 빚기도 한다. 백린 파편을 꺼내기 위해 칼로 살점을 도려내야만 불길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끈질기고 잔인한 연소 반응이다. 더욱이 백린은 지용성(기름에 잘 녹는 성질)이 강해 사람의 지방 조직을 타고 체내로 빠르게 흡수된다. 혈액 속으로 들어간 백린 독성은 간과 신장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급성 다발성 장기 부전을 일으켜 화상을 간신히 견뎌낸 생존자조차 끝내 고통스러운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문자 그대로 몸 안팎을 동시에 태워버리는 화학적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질식하는 안개, 유독성 연막의 공포
백린탄이 무서운 또 다른 이유는 연소 과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고 하얀 연기다. 백린이 산소와 결합하면 '오산화인(P4O10)'이라는 가루가 엄청나게 뿜어져 나온다. 이 가루는 대기 중의 수분이나 사람의 눈물, 땀, 침과 맹렬하게 반응하여 강력한 부식성 산인 인산(Phosphoric Acid)으로 변한다. 백린탄이 터진 지역은 순식간에 짙은 하얀 안개로 덮이는데, 이 연기를 들이마신 사람들의 눈 점막과 기관지는 산성비의 수만 배에 달하는 맹산에 노출되어 타들어 간다. 폐 속에 인산이 차오르면 극심한 고통 속에 질식하거나 만성 호흡기 장애를 안고 평생을 살아야 한다. 군대에서 백린탄을 적의 시야를 가리는 '연막탄(Smoke Screen)' 목적으로 애용하는 이유가 바로 이 엄청난 양의 연기 때문이다. 하지만 밀폐된 시가지나 민간인이 거주하는 지역에 연막을 친다는 명목으로 쏘아 올린 백린탄은 적군과 아군, 노약자를 가리지 않고 반경 수십 미터 내의 모든 이들의 폐를 화학적으로 부식시키는 광범위한 독가스 공격이나 다름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위선적인 국제법의 허점
이토록 잔인한 살상력에도 불구하고 백린탄이 여전히 현대전에서 심심치 않게 사용되는 이유는 국제법의 얄팍한 허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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