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의 세계는 정말 신비하죠. 고전역학적인 사고에 물들어 있는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하는 현상들이, 양자역학을 적용한다면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 중 하나의 예시인 ‘양자 지우개’라는 개념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이중 슬릿 실험과 양자 지우개
모두들 한 번쯤 이중 슬릿 실험에 대해서는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네, 그 이중 슬릿 실험 맞아요. 보통 이중 슬릿 실험에서는 스크린에 간섭 무늬가 나타나게 됩니다. 만약 한 번에 광자를 하나씩만 내보내는 아주 희미한 광원으로 실험을 해도 간섭 무늬가 똑같이 나옵니다. 다시 말해, 광자가 어떻게든 두 슬릿과 동시에 상호작용을 해서 자기자신과 간섭을 한다는 이야기죠. 이처럼 빛은 일종의 ‘확률 파동’으로서,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가집니다.
그러다 어떤 과학자들은 ‘슬릿에다가 빛이 어느 슬릿으로 통과하는지 알려주는 장치를 달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빛의 확률 파동이 붕괴하기 때문에, 간섭 무늬가 사라지고 그저 줄 두 개가 나타난다는 예상이었습니다. 빛의 파동성 대신에 입자성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을 실험으로 직접 입증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광자를 관측하려고 하는 행위는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광자에 변화를 주어 결국 간섭 무늬를 완전히 파괴해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1982년, 스컬리(M. O. Scully)와 드륄(Kai J. Drühl)은 이 이론을 확인할 수 있는 실험 방식을 제안합니다. 아래의 그림을 살펴봅시다.

그림에서 BBO라는 장치가 있는데, 이것은 비선형 광학 물질 중 하나로 광자 하나가 들어오면 그 절반의 진동수를 가지고, 서로 얽힌 상태에 있는 광자 2개를 내보내는 특징을 가집니다. 두 광자 중 하나는 위쪽 검출기 Dp로 이동하고, 하나는 아래쪽으로 가는데 도중에 이중 슬릿을 한 번 거쳐서 Dx에 도달합니다. Dx를 움직이면서 빛의 세기를 재어 무늬를 그리는 방식이죠. 만약 그냥 이중 슬릿만 놓는다면, 당연히 우리가 잘 아는 간섭무늬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위의 그림처럼 각 슬릿에 원형 편광 장치를 달고(clockwise, counter-clockwise), Dx에 편광을 구분할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광자가 어느 슬릿을 통과했는지 알 수 있게 되고, 그래서 간섭무늬가 완전히 사라져 버립니다. 아까 서론에서의 이야기를 입증한 것입니다.

하지만 더욱 신기한 것이 남아 있습니다. 위의 그림처럼 Dp로 가는 길에도 편광 장치를 다는데, 이번에는 선형 편광기를 답니다. 위로 가는 광자와 아래로 가는 광자가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이 편광기는 아래쪽 편광기의 성질을 바꿉니다. 따라서 Dx에서 어느 쪽으로 광자가 왔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양자적 정보를 ‘지워’ 버린 것이죠. 이렇게 하면 신기하게도, 다시 간섭무늬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들은 고전역학적으로 ‘빛이 파동이다’라는 관점에서는 해석할 수가 없는 현상입니다. 애초에 광자 두 개가 얽혀 있다는 것도 고전역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해 봅시다. 솔직히 [그림 1]까지는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합니다. 우리가 구분할 수 있게 되니까, 파동함수가 붕괴되어서 입자성이 드러났다, 이렇게 설명할 수 있죠. 하지만 [그림 2]는 너무나도 신기합니다. 간섭을 일으키는 광자가 지나는 아래쪽 경로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고, 위쪽에 다른 편광기 하나를 놓았을 뿐인데 정보가 지워지면서 간섭무늬가 드러났습니다. 양자 지우개 실험은 양자역학의 신비한 성질을 보여주는 너무 좋은 예시입니다.
지연된 선택 양자 지우개(Delayed-Choice Quantum Eraser)
양자 지우개만 해도 충분히 신기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번 글의 핵심은 이 ‘지연된 선택 양자 지우개’입니다. 제목처럼 미래가 과거에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보이는 신기한 현상이죠. 이름이 너무 기니까 앞으로는 약자로 DCQE라고 부르도록 합시다.

위의 그림은 DCQE 실험의 설계입니다. 상당히 복잡한데, 결국 이 설계의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검출기 D0로는 두 슬릿(A, B)에서 나온 빛이 그대로 들어가며, 간섭 무늬가 생기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곳이다.
2. 검출기 D1과 D2에서 광자가 검출되었다면, A에서 온 것일 수도 있고 B에서 온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두 경로가 융합되는 곳이다.
3. 검출기 D3에서 광자가 검출되면 그건 B에서 온 것이다.
4. 검출기 D4에서 광자가 검출되면 그건 A에서 온 것이다.
그런데 이 4가지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처음 슬릿에서 D0까지 거리보다 다른 검출기들까지 거리가 2.5m 정도 길다는 사실입니다. 즉, 빛의 입장으로 8ns 정도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검출기 D1이나 D2만 작동시킨다면 어느 슬릿에서 광자가 나왔는지 알 도리가 없기 때문에 D0에는 단순한 간섭무늬가 나타나게 됩니다. 반면 D3나 D4를 작동시키면 경로를 추적할 수 있기 때문에 입자성을 띠는 그래프가 나타납니다. 이는 아래의 실험 그래프들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지 않나요? 어느 검출기를 사용할지는 분명히 D0에 광자가 도달한 이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분명히 8ns가 지난 후의 일입니다. 만약 이 실험 장치를 엄청나게 크게 만들어, 1광년쯤 거리 차이가 난다고 해 봅시다. 철수는 검출기 D0 앞에서 어떤 무늬가 생기는지 보고 있고, 영희는 D1,2,3, 4가 있는 곳으로 가서, 뭘 관측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합시다. 영희는 철수가 레이저를 작동시킨 후 364일 동안 고민하다가 마지막 하루에 어느 검출기를 볼지 정할 수 있습니다. 뭘 보느냐에 따라 간섭무늬가 바뀌니, 영희가 무늬를 결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철수의 입장은 충격적입니다. 철수는 레이저를 작동시킨 후 1시간 만에 무늬를 완벽하게 관측합니다. 분명 영희의 결정은 364일 뒤에 있는데도 말이죠. 이는 인과관계를 심각하게 위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미래가 과거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보이죠. 심지어는 우리는 철수가 영희에게 관측하고 있는 검출기를 바꾸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경우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상상은 독자 여러분들께 맡기겠습니다.
DCQE와 같은 양자적 현상은 시스템의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습니다. 즉,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국소적인’ 세계가 아니라, 시스템 전체가 서로 얽혀있는 ‘비국소적’인 세계입니다. 너무 어려워서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겠지만, 수식을 이용하여 이 문제를 풀어보려 한다면 이 사실은 명확해집니다. 그래서, 영희가 무늬를 결정한다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영희가 어떤 검출기를 택해서 무늬가 저렇게 나왔다’라는 말과 ‘저런 무늬가 나와서 그 광자가 어느 검출기에서 드러날지 영향을 주었다’는 말은 정확히 같은 수준으로 옳은 주장입니다. 우리는 ‘시스템’을 하나로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양자 지우개’라는 것을 통해 신기한 양자 현상을 살펴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1] Kim, Yoon-Ho; R. Yu, S. P. Kulik, Y. H. Shih, Marlan Scully "A Delayed "Choice" Quantum Eraser" (2000)
[2] 위키피디아 – Delayed-Choice Quantum Eraser
https://en.wikipedia.org/wiki/Delayed-choice_quantum_eraser
[3] 위키피디아 – Quantum Eraser Experiment
https://en.wikipedia.org/wiki/Quantum_eraser_experiment
<이미지>
[1] https://en.wikipedia.org/wiki/Quantum_eraser_experiment
[2] https://en.wikipedia.org/wiki/Quantum_eraser_experiment
[3] https://en.wikipedia.org/wiki/Delayed-choice_quantum_eraser
[4] https://en.wikipedia.org/wiki/Delayed-choice_quantum_eraser
[표지] Google Image

Physics 학생기자 여승현
2019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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