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생명

문제아 호르몬

인간의 충동과 감정을 지배하는 뇌 속 호르몬들의 화학적 작용과 십 대 청소년기의 호르몬 불균형이 일으키는 행동 변화를 분석한다.

편집부 · 2023년 9월 22일 · 읽는 데 4분

빛나는 인간의 뇌에 작용하는 호르몬과 신경 회로의 추상적 시각화
빛나는 인간의 뇌에 작용하는 호르몬과 신경 회로의 추상적 시각화

인간의 몸은 거대한 화학 공장과 같다. 수십조 개의 세포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혈관을 타고 온몸을 누비며 명령을 전달하는 미세한 화학 메신저, 즉 '호르몬(Hormone)' 덕분이다. 키를 자라게 하고 음식을 소화시키며 혈당을 조절하는 기본적인 생리 작용은 물론, 우리가 느끼는 기쁨, 슬픔, 분노, 사랑과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마저도 알고 보면 뇌와 내분비계가 뿜어내는 호르몬의 정교한 칵테일 비율에 의해 좌우된다. 그런데 이 호르몬 시스템이 항상 완벽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시기, 특히 십 대 청소년기에는 뇌와 신체가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체내 호르몬의 분비량이 요동치고 균형이 깨지기 일쑤다. 이 시기의 청소년들이 이유 없이 반항적이거나 극단적인 감정 기복을 보이고, 무모한 충동에 쉽게 휩싸이는 현상은 결코 개인의 도덕적 결함이나 의지 부족 때문이 아니다. 뇌 속의 신경 전달 물질과 성호르몬이 빚어내는 통제 불능의 화학적 폭풍, 이른바 '문제아 호르몬'들의 반란 때문이다. 이성적인 사고를 마비시키고 우리의 본능을 조종하는 뇌 속 화학 물질들의 은밀한 지배 구조를 파헤쳐 보자.

쾌락과 보상의 덫, 도파민

우리의 행동을 가장 강력하게 통제하는 화학 물질 중 하나는 뇌의 신경 전달 물질인 '도파민(Dopamine)'이다. 도파민은 뇌의 보상 회로를 자극하여 우리에게 강렬한 쾌락과 만족감을 선사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게임에서 이겼을 때, 칭찬을 받을 때 분비되는 도파민은 짜릿한 성취감을 주며 그 행동을 계속 반복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문제는 청소년기의 뇌가 이 도파민에 비정상적으로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성인에 비해 청소년의 뇌는 동일한 자극을 받아도 훨씬 더 많은 양의 도파민을 분비하거나 수용체가 더 강하게 반응하도록 세팅되어 있다. 이 때문에 십 대들은 또래 집단에게 인정받거나 새로운 자극(일탈, 위험한 장난, 자극적인 콘텐츠 등)을 쫓을 때 성인보다 훨씬 더 큰 쾌락을 느낀다. 도파민이 지배하는 보상 회로는 맹렬하게 가동되는 반면, 충동을 억제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뇌의 전두엽은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완전히 성숙한다. 브레이크는 아직 고장 나 있는데 엑셀레이터만 끝까지 밟혀 있는 자동차와 같은 셈이다. 이 위험한 화학적 불균형이 바로 십 대를 무모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다.

성호르몬의 폭주,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

사춘기가 되면 뇌의 시상하부가 깨어나면서 생식샘을 자극하여 성호르몬의 분비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남성의 고환에서 주로 분비되는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과 여성의 난소에서 분비되는 에스트로겐(Estrogen)은 신체를 어른으로 탈바꿈시킬 뿐만 아니라 뇌의 구조와 감정 상태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입힌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급증하면 공격성과 경쟁심이 덩달아 높아진다. 이는 본능적으로 짝짓기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생물학적 작용이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사소한 말다툼에 쉽게 주먹을 쥐거나 위계질서에 격렬하게 반항하는 형태로 나타나기 쉽다. 반대로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의 급격한 변동은 여성 청소년들의 뇌 변연계(감정 중추)를 예민하게 자극하여 불안, 우울, 심한 감정 기복을 유발한다.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리는 성호르몬 수치는 뇌의 세로토닌(기분을 안정시키는 호르몬) 수치마저 억눌러 버리기 때문에, 이 시기의 청소년들은 세상의 모든 불행을 짊어진 듯한 우울감에 빠졌다가도 금세 별것도 아닌 일에 폭소를 터뜨리는 종잡을 수 없는 감정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어두운 공간에서 밝게 빛나는 도파민과 테스토스테론의 화학 구조

수면을 방해하는 멜라토닌의 장난

청소년들이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을 붙잡고 잠들지 못하다가 아침에는 지각을 밥 먹듯 하는 이유 역시 호르몬의 장난과 관련이 깊다. 수면을 유도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Melatonin)은 주변이 어두워지면 뇌의 송과선에서 분비되어 우리 몸을 수면 모드로 전환시킨다. 성인들은 보통 밤 9시에서 10시경부터 멜라토닌이 활발하게 분비되지만,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생체 시계가 약 2시간 정도 뒤로 밀리는 생리학적 변화가 일어난다. 즉, 밤 11시나 자정이 넘어서야 비로소 수면 호르몬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몸은 아직 낮이라고 인식하고 있는데 부모님의 잔소리에 일찍 불을 끄고 누워봤자 잠이 올 리 없다. 게다가 자기 전에 쳐다보는 스마트폰의 푸른빛(블루라이트)은 뇌가 대낮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어 멜라토닌의 분비를 더욱 지연시킨다. 늦게 분비된 멜라토닌은 아침이 밝아도 뇌에 길게 남아 있어 아침형 인간이 되는 것을 생물학적으로 방해한다. 학교의 이른 등교 시간과 호르몬의 어긋난 사이클은 만성적인 수면 부족을 낳고, 이는 다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높여 짜증과 충동성을 더욱 악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화학적 이해

우리의 기분과 행동이 단지 몇 방울의 화학 물질에 의해 춤추듯 흔들린다는 사실은 다소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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