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생명

모쏠인 우리가 몰랐던 잭스 의 비밀

동물계의 짝짓기 과정에서 작용하는 페로몬의 화학적 비밀과 유전자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알아본다.

편집부 · 2024년 12월 4일 · 읽는 데 4분

밝은 초록색 잎 위에서 짝짓기를 하는 곤충의 접사 사진
밝은 초록색 잎 위에서 짝짓기를 하는 곤충의 접사 사진

지구상의 거의 모든 다세포 생물은 '성(Sex)'이라는 번식 전략을 선택했다. 무성 생식처럼 혼자서 스스로를 복제하면 훨씬 빠르고 에너지를 절약하며 번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짝을 찾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하고 포식자의 눈에 띄는 위험을 감수하며, 수컷끼리 피 터지는 경쟁을 벌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유전자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끊임없이 진화하며 공격해 오는 바이러스나 기생충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부모의 유전자를 섞어 완전히 새로운 조합의 자손을 만들어내는 유성 생식이 생물학적으로 가장 유리한 전략이다. 이 치열하고도 경이로운 짝짓기의 세계는 결코 낭만적인 감정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상대를 유혹하고 통제하기 위한 고도의 화학전이 숨어 있다. 특히 곤충이나 포유류가 짝을 찾을 때 내뿜는 '페로몬(Pheromone)'은 뇌의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키고 본능을 강제로 깨우는 강력한 화학 신호다. 모태솔로들은 알지 못하는, 동물계의 은밀하고도 치열한 짝짓기 화학의 비밀을 파헤쳐 보자. 사랑의 묘약은 마법이 아니라 분자들의 정교한 상호작용이다.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사랑의 암호, 페로몬

페로몬은 같은 종의 개체들 사이에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체외로 분비되는 화학 물질이다. 곤충의 세계에서 페로몬의 위력은 절대적이다. 1959년 독일의 화학자 아돌프 부테난트가 누에나방의 암컷에서 최초로 추출해 낸 페로몬인 '봄비콜(Bombykol)'은 불과 1조 분의 1그램이라는 극미량만 공기 중에 떠다녀도 수 킬로미터 밖의 수컷 누에나방을 미치게 만든다. 수컷은 크고 깃털처럼 생긴 더듬이로 공기 중의 봄비콜 분자를 단 몇 개만 감지해도 모든 행동을 멈추고 암컷이 있는 방향을 향해 바람을 거슬러 날아간다. 수컷의 더듬이에 있는 수용체 단백질은 오직 봄비콜 분자의 특정 화학 구조(자물쇠와 열쇠처럼)에만 완벽하게 들어맞도록 진화했기 때문에 다른 곤충의 페로몬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페로몬은 단순히 위치를 알리는 것을 넘어, 상대방의 교미 의지를 강제로 유발하거나 경쟁자를 억제하는 호르몬과 같은 역할을 체외에서 수행한다. 이는 암흑 속에서도, 광활한 숲속에서도 오직 자기 짝만을 찾아낼 수 있는 가장 완벽하고 은밀한 화학적 와이파이(Wi-Fi) 통신망이다.

포유류의 후각과 MHC 유전자

그렇다면 곤충보다 훨씬 복잡한 뇌를 가진 포유류, 특히 인간에게도 짝을 끌어당기는 페로몬이 존재할까? 스위스의 생물학자 클라우스 베데킨트가 수행한 유명한 '땀 냄새나는 티셔츠 실험'은 인간의 무의식적인 짝짓기 선호도에 후각이 얼마나 깊이 관여하는지 보여주었다. 연구진은 남성들에게 이틀 동안 같은 티셔츠를 입게 한 뒤, 여성들에게 그 티셔츠들의 냄새를 맡고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냄새를 고르게 했다. 놀랍게도 여성들은 자신과 'MHC(주조직적합성복합체) 유전자'가 가장 다르게 생긴 남성의 체취를 가장 섹시하고 매력적이라고 평가했다. MHC 유전자는 우리 몸의 면역 체계를 담당하는 핵심 유전자로, 부모로부터 서로 다른 MHC 유전자를 물려받을수록 자식은 더 다양하고 강력한 면역력을 갖게 된다. 즉, 여성의 코는 본능적으로 자신과 다른 면역 체계를 가진 남성의 화학적 체취를 긍정적인 페로몬처럼 인식하여, 미래의 자녀가 더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도록 생물학적 필터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성적인 선택이라고 믿었던 끌림의 이면에는 철저하게 프로그래밍된 유전자의 생존 본능이 작용하고 있다. 공기 중을 떠다니는 빛나는 페로몬 분자의 화학적 구조

정자들의 눈물겨운 화학적 추격전

치열한 구애 끝에 짝짓기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경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수컷의 몸을 떠난 수억 마리의 정자들은 암컷의 난자에 도달하기 위해 혹독한 화학적 장애물을 통과해야 한다. 암컷의 생식기 내부는 정자를 죽이는 강한 산성 환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백혈구들은 외부에서 들어온 정자를 침입자로 간주하여 맹렬하게 공격한다. 이 죽음의 계곡을 뚫고 살아남은 극소수의 정자만이 나팔관에 도달한다. 이때 난자는 '프로게스테론(Progesterone)'이라는 화학 물질을 나침반 삼아 방출한다. 정자의 머리에는 프로게스테론을 감지하는 '캣스퍼(CatSper)'라는 특수한 이온 통로가 있어서, 난자가 내뿜는 호르몬의 농도가 짙어지는 방향을 향해 미친 듯이 꼬리를 치며 헤엄쳐 간다. 이를 주화성(Chemotaxis)이라고 한다. 난자에 가장 먼저 도달한 정자가 난자의 외벽을 녹이는 효소를 분비하여 안으로 진입하는 순간, 난자는 표면의 화학적 구조를 1초도 안 되는 찰나에 완전히 바꿔버려 두 번째 정자가 들어오는 것을 완벽하게 차단(다정자 수정 방지)한다. 단 하나의 승자만을 허락하는 냉혹하고도 신비로운 화학 반응의 연속이다.

수컷의 희생과 기괴한 번식 전략

곤충과 절지동물의 세계에서는 암컷에게 화학적 물질이나 영양분을 바치며 스스로를 희생하는 엽기적인 짝짓기 전략도 흔하게 관찰된다. 사마귀나 과부거미 수컷은 짝짓기 도중 암컷에게 자신을 잡아먹히도록 기꺼이 몸을 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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