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생명

가상 현실 헤드셋을 쓰면 왜 멀미가 날까

가만히 앉아 있는데 눈은 움직인다고 말한다. 눈과 귀가 서로 다른 신호를 보낼 때 뇌가 혼란에 빠지며 생기는 가상 현실 멀미의 원리를 살펴본다.

Antigravity AI · 2023년 1월 20일 · 읽는 데 4분

어두운 방에서 가상 현실 헤드셋을 쓴 사람
어두운 방에서 가상 현실 헤드셋을 쓴 사람

가상 현실 멀미는 눈이 보내는 움직임 정보와 귓속 전정 기관이 보내는 움직임 정보가 서로 어긋날 때 생긴다. 헤드셋 속 화면에서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데, 실제 몸은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다. 뇌는 두 감각이 서로 다른 말을 하는 상황을 이상하게 여기고, 그 결과 어지러움, 메스꺼움, 식은땀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이를 감각 충돌 이론이라 부르며, 가상 현실 멀미를 설명하는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생각이다.

몸은 움직임을 어떻게 느끼나

우리는 움직임을 여러 감각으로 함께 느낀다. 눈은 주변 풍경이 흘러가는 것을 본다. 귓속 깊은 곳의 전정 기관은 머리의 기울기와 회전, 속도의 변화를 감지한다. 세 개의 반고리관은 서로 다른 방향의 회전을, 그 옆의 이석 기관은 기울기와 직선 방향의 가속을 맡는다. 근육과 관절도 몸의 자세를 알려 준다.

평소에는 이 감각들이 같은 이야기를 한다. 걸으면 풍경이 지나가고, 전정 기관도 움직임을 느끼고, 다리 근육도 일을 한다. 뇌는 이 신호들을 합쳐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판단한다.

귓속 반고리관과 전정 기관의 구조를 그린 해부 도식

감각이 어긋나면 왜 메스꺼워지나

가상 현실에서는 눈만 움직임을 느끼고 전정 기관은 가만히 있다고 말한다. 뇌는 이런 불일치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왜 하필 메스꺼움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진화적인 해석이 있다. 자연에서 감각이 이렇게 어긋나는 대표적인 경우가 독성 물질을 먹었을 때라는 것이다. 몸이 독을 먹었다고 판단하면 토해서 내보내려 한다는 설명이다. 흥미로운 해석이지만, 이것이 사실인지는 아직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배나 차에서 생기는 멀미도 같은 뿌리를 가진다. 차 안에서 책을 읽으면 눈은 가만히 있는 글자를 보는데 전정 기관은 흔들림을 느낀다. 가상 현실 멀미는 이것을 거꾸로 뒤집은 것에 가깝다. 눈은 움직이는데 몸은 가만히 있다.

상황 눈이 느끼는 것 전정 기관이 느끼는 것
차 안에서 책 읽기 정지 움직임
가상 현실 롤러코스터 움직임 정지
평소 걷기 움직임 움직임 (일치)

기계의 어떤 문제가 멀미를 키우나

감각 충돌 말고도 장비의 한계가 멀미를 부추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연이다. 머리를 돌렸을 때 화면이 따라 바뀌기까지 시간이 조금만 늦어도, 뇌는 몸의 움직임과 시야가 어긋난다고 느낀다. 화면이 초당 갱신되는 횟수가 낮아 움직임이 끊겨 보이는 것도 문제다. 그래서 가상 현실 기기는 지연을 매우 짧게 줄이고, 화면을 초당 90번 이상 바꾸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렌즈와 눈 사이의 거리가 맞지 않거나 화면이 흐릿한 것도 불편함을 더한다.

빠르게 회전하는 화면 움직임을 표현한 흐릿한 풍경

멀미를 줄이는 방법은 무엇인가

콘텐츠 설계로 멀미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조이스틱으로 매끄럽게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방식보다, 가고 싶은 곳을 가리키면 순간 이동하는 방식이 멀미를 덜 일으킨다. 빠르게 움직일 때 시야의 가장자리를 어둡게 좁히면 눈이 느끼는 움직임이 줄어 도움이 된다. 화면 안에 자동차의 계기판이나 조종석처럼 함께 움직이는 고정된 기준물을 두는 것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사람에게도 적응 능력이 있다. 처음에는 쉽게 멀미를 느끼던 사람도 짧은 시간씩 반복해서 쓰면 차츰 견디는 시간이 늘어난다. 다만 몸이 불편하다고 느낄 때는 바로 멈추는 것이 좋다. 억지로 버티면 오히려 증상이 오래 남을 수 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

같은 콘텐츠를 보고도 어떤 사람은 멀쩡하고 어떤 사람은 금방 멀미를 느낀다. 이런 개인차가 어디서 오는지는 아직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 감각 충돌 이론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고 보고, 자세를 안정적으로 유지하지 못할 때 멀미가 생긴다는 다른 이론을 내놓는 연구자도 있다. 가상 현실이 교육과 의료로 쓰임새를 넓혀 갈수록 멀미의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는 일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어서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