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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프로젝트, 그날의 이야기 <Day One>

최종 수정일: 2020년 9월 18일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 인도의 유명한 경전 바가바드 기타에 등장하는 크리슈나의 말입니다. 2차 대전중 원자 폭탄을 개발하기 위한 미국의 핵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이 성공한 후,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을 이끌던 줄리어스 오펜하이머가 남긴 말이기도 하지요.


1945년 2차 대전 말, 미국은 두 발의 원자 폭탄을 일본 본토에 투하함으로써 일본으로부터의 무조건 항복과 길었던 전쟁의 종전을 이끌어냅니다. 이는 2차 대전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잘 알려진 사실이며, 바로 그 원자 폭탄과 핵무기에 대한 세계 각국의 이해 관계는 오늘까지도 많은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원자 폭탄은 누가, 어떻게 만들어낸 것일까요? 아인슈타인과 같은 몇몇의 천재물리학자들의 생각과 미 정부의 전폭적인지지 아래 뚝딱 만들어진 것일까요? 2차 대전으로부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20세기의 물리학계를 이끌던 독일은 원자 폭탄이라는 엄청난 무기를 생각해내지 못했던 걸까요? 너무나도 흥미로운 질문들이지만, 관련된 책이나 논문 등을 보기에는 너무나도 어렵고 막막한 것 역시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저런 질문들에 생생한 대답을 제공해줄 영화를 한 편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1989년에 방영된, <Day One> 이라는 TV 다큐멘터리-드라마 영화입니다.


<Day One>, 1989
<Day One> 영화 포스터

<Day One> 트레일러

영화는 2차 대전 발발 초, 나치의 압제를 피해 독일을 떠나는 헝가리계 물리학자 레오 실라르드와 독일에 남게 그의 동료들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영국의 대학에 도착한 레오 실라르드는 당시 이미 저명한 물리학자의 반열에 올라 있던 러더퍼드의 강의에서 원자를 깨고 분열시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는, 원자 폭탄의 기초가 되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 생각을 피력하지만 러더퍼드를 비롯한 다른 물리학자들에게 무시당합니다. 그에 굴하지 않고 그는 영국의 군에 자신의 원자 폭탄에 대한 아이디어와 그에 필요한 연쇄반응에 대한 논문을 작성해 제출하지만, 역시나 무시당하고 맙니다.

실라르드와 아인슈타인

영국에서 이러한 무시와 치욕을 겪은 실라르드는 미국으로 건너가고, 그곳에서 엔리코 페르미를 비롯한 새로운 물리학자들과 함께 원자 폭탄에 필요한 핵분열의 연쇄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실험을 진행합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이미 전 세계적으로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위상을 가진 아인슈타인을 만나 원자 폭탄의 가능성에 대해 설명하고, 그의 동의를 바탕으로 하여 1941년, 미 정부로부터 원자 폭탄 개발을 위한 실험의 필요성을 관철시키는 데에 마침내 성공합니다.

물리학자들에게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는 그로브즈 장군

펜타곤은 그로브즈 장군을 총책임자로 임명하고,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이름 하에 원자 폭탄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군에 몸담아 왔고 군대의 빠르고 정확하며 효율적인 일 처리 방식을 중시하는 현실적인 그로브즈 장군은 정확한 답을 주지 못하는데다 자유롭고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물리학자들과 첫 만남부터 갈등을 빚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히 그로브즈 장군과 과학자들 사이의 연구 태도에 대한 갈등만을 주제로 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2차 대전이라는 전쟁 기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체제경쟁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하였던 당시의 상황 속에서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물리학자들은 공산당의 지지자로 의심받기도 하고, 맨해튼 프로젝트의 기밀 유지와 보안을 두고 갈등을 빚기도 합니다.


후기

우리는 과학 기술이 무엇을 만들었는지, 가령 오늘날 누구나 사용하는 핸드폰 등의 전자기기에서부터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쟁이었던 2차 대전의 종전을 가져다 준 원자 폭탄에 이르기까지, 그 결과에 대해서는 꽤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원자 폭탄이든 핸드폰이든 누군가 그것을 어떻게든 만들어낸 것은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도대체 그 중요한 것들을 누가 어떻게 만들어낸 것인지 역시 분명 몹시 흥미로운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상당히 부족해 보입니다.


영화 <Day One>은 원자 폭탄의 개발 과정에 있어 단순히 과학자들의 연구와 실험 과정 뿐만 아니라,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발생한 여러 사회적 갈등 역시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인간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 원자 폭탄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떠돌아 다녀야 했던 레오 실라르드, 과학적 능력과는 무관하게 공산당원이라는 이유로 자질과 자격을 의심받는 오펜하이머 등 역사 속의 과학자들과 그들의 업적들은 그저 실험실 속의 논문과 실험들 속에서 탄생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이는 비단 맨해튼 프로젝트의 이야기뿐만이 아닌, 과학사 전반에 걸쳐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영화에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원자 폭탄을 처음 제안한 실라르드가 나중에는 가장 앞장서 원자 폭탄의 사용에 반대한 물리학자들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실제로도 그는 원자 폭탄을 적국을 견제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유하고 있을 것만을 주장하며 원자 폭탄의 실제 사용에 대해서는 강력히 반대하였습니다. 영화에서는 보여지지 않지만, 2차 대전 발발 후에도 독일에 남아 있던 저명한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역시 그의 자서전 <부분과 전체>에서 그와 그의 동료 물리학자들 역시 독일 정부로부터 원자 폭탄을 비롯한 무기 개발을 요구받았으나, 과학자로서의 양심을 이유로 독일 정부를 속이며 제대로 된 무기 개발에 착수하지는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또 다른 물리학자들은 원자 폭탄 개발에 실패할 경우 독일의 식품망에 방사성 원소를 퍼뜨리는 짓을 해서라도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듯, 모든 물리학자들이 실라르드 또는 하이젠베르크와 같은 생각과 가치관을 공유했던 것은 아닙니다. 영화는 이러한 과학자의 책임에 대해 역시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어느새 영화가 개봉한지 1989년으로부터 30여년이나 지난 만큼 영화에서 영상의 질이나 스토리 구성 등에 있어서는 다소 별로라거나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자폭탄과 맨해튼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 미래의 과학자를 꿈꾸고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한번쯤 보아도 좋을 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정규 교육과정에서 배우기 힘든 맨해튼 프로젝트와 과학 기술 발전의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에 대해 알 수 있고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영화인만큼, 상기한 것과 같은 분들에게만큼은 <Day One>이 분명 흥미롭고 유익한 영화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합니다.

 

첨부 이미지 출처

[1] https://www.amazon.com/Day-One-VHS-Brian-Dennhy/dp/B004KTJBW0

[2] 영화 장면 중 캡쳐

첨부 동영상 링크

[1] https://youtu.be/bzhui_IJz3U

 

KOSMOS PHYSICS 에세이

작성자│유지환

발행호│2020년 봄호

키워드#맨해튼프로젝트 #원자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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