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감정을 느낀다. 감정은 그 존재 자체가 신비이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은 흘러가는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우리 행동의 이유이자 결과가 되기도 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에서는 감정을 주로 인문학에서 다루었다. 또한, 모든 노래에 감정이 담겨 있고, 문학과 그림을 통해서 아주 새로운 감정을 느끼듯이 감정은 예술의 핵심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감정을 과학책에서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감정은 흔히 과학책에서 다루는 주제와 많이 벗어나 있다. 감정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느낌이며, 실험실에서 감정을 이끌어내거나 측정하기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인간의 다른 정신적 경험인 인지나 지각과 비교해도 감정은 가장 주관적으로 느껴지며 측정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감정의 성질이 주관적일지라도 그것을 연구하는 방법이 주관적이라는 법은 없다. 이목을 끌려고 제목을 요란하게 달았지만, 감정에 대한 과학이 주관적인 과학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대상에 대한 과학이라는 것이지 연구의 방법이 주관적이라는 이야기가 전혀 아니다. 과학은 주관적인 감정을 객관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많은 노력을 해왔고, 오늘 그 일부를 소개하려고 한다.
감정은 어떻게 생기는가?

감정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은 도대체 감정이 어떻게 생기냐는 질문이다. 혼자서 가만히 생각해봐도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이다. 그러면 감정이 생기는 상황을 한번 상상해보자. 내 눈앞에 무서운 개가 이빨을 드러내며 사납게 달려오고 있다. 나는 아주 무서운 감정을 느낄 것이고, 도망칠 곳이 있으면 재빨리 도망칠 것이다. 그리고 심장이 빨리 뛸 것이고, 소름도 돋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겪는 무서움의 정서(영어의 emotion에 해당하는 말로 특정한 대상에 대한 감정을 의미)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제임스-랑게 정서 이론: 울어서 슬프다.
여기에 대한 가장 오래된 이론은 제임스-랑게의 정서 이론(James-Lange theory of emotion)이다. 두명의 이름이 붙은 이유는 제임스가 1884년, 랑게가 1885년 각각 독립적으로 개발했기 때문이다. 제임스와 랑게는 위 예시에서 무서움의 정서는 심장이 빨리 뛰고, 소름이 돋는 신체적 변화를 인지하면서 생기는 것이라 하였다. 간단히 말하면,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울어서 슬프다는 것이다. 이는 감정이 신체 변화를 유발한다는 일반적인 통념과 반대되지만 신선하고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감정이 신체변화의 결과라면 신체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심장이 빨리 뛰고, 땀이 나고, 소름이 돋는 활동은 자율신경계에 의해 결정된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자율신경계 중에 교감신경은 심장이 빨리 뛰는 등 급박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생리반응을 결정하고, 부교감신경은 교감신경에 반대되는 반응을 일으키면서 균형을 맞춘다. 감정적인 신체변화를 일으키는 중추가 자율신경계이고 이 자율신경계는 내장에 많이 분포하고 있기 때문에 제임스는 감정의 중추는 내장이라고 하였다. 신선한 주장이었지만 모두가 이 이론에 동의한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많은 반박이 쏟아져 나왔다.
캐논-바드 정서 이론: 우는 동시에 슬프다.
1927년, 생리학자 캐논과 그의 제자 바드는 제임스-랑게의 이론을 강력하게 반박했다. 캐논과 바드는 여러 실험을 제시하였는데 그 중 아주 충격적인 실험이 하나를 소개하겠다. 바로 고양이의 교감신경을 모두 제거하는 실험이었다. 제임스의 이론에 의하면 고양이의 교감신경이 활성화되지 않으니 감정을 느끼는 것이 이론적으로 불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고양이는 교감신경이 있거나 없거나 똑같은 감정적인 행동(짖는 개가 있을 때,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등)을 보였다. 이 밖에 여러 근거를 들어 제임스-랑게 이론을 강력하게 공격하였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신체 변화와 정서의 경험은 동시에, 독립적으로 일어난다.”는 캐논-바드 정서 이론(Canon-Bard theory of emotion)을 제안하였다.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였던 제임스와 달리 생리학자였던 캐논-바드는 자신의 이론을 지지하는 생리학적인 이유를 제시하였다.
먼저 캐논과 바드는 감정은 조절할 수 없다는 점을 관찰했다. 친구랑 혹은 가족이랑 장난을 치면서 간지럼을 꾹 참으려고 했던 적이 있는가? 간지러워 웃는 것이 내가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없다. 의식을 담당하는 뇌의 부위는 뇌의 겉부분인 대뇌겉질(피질)이다. 대뇌겉질은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므로 캐논은 뇌의 겉질보다 안쪽에 존재하는 피질하 부위, 그중에서도 시상이 감정의 중추라고 주장하였다. 물론 이런 주장에는 여러 실험적 근거가 있었다. 그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동물의 대뇌 겉질을 제거했을 때는 평상시와 같은 감정 반응을 보인 데 반해, 시상을 제거했을 때는 감정 반응에 이상이 없었다. 캐논과 바드는 시상에서 일어나는 반응이 정서와 신체 변화가 동시에 독립적으로 영향을 주어, 두 영향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캐논-바드 정서 이론은 시상의 중요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나머지 뇌의 역할을 무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요인 정서 이론: 우는 이유를 알아서 슬프다.
여태껏 생리적인 반응이 중심이 된 정서 이론이 전개되었다면, 1962년 샤흐터와 싱어는 인지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요인 정서 이론(two factor theory of emotion)을 발표한다. 샤흐터와 싱어의 주장은 인간은 생리적인 반응이 일어났을 때 그 원인을 해석하면서 정서를 느낀다는 것이다. 개가 달려오는 경우를 예시로 들어보면, 먼저 개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 심장이 빨리 뛰고, 그다음에 심장이 빨리 뛰는 이유를 주어진 상황에서 분석한 후, 마지막으로 개가 그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때 두려움의 정서가 형성된다.
정서 개념이란?
위의 이론들은 정서 이론에 대한 초창기의 이론들이고 최근에 뇌과학의 발전과 여러 심리학 실험 등을 통해 세 가지 이론 다 맞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정서 형성에 대해 이론은 이까지 알아보고 감정의 다른 요소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행복”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공통으로 느끼는 어떤 좋은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이렇게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를 우리는 자주 사용한다. 예로 들어, “점심을 많이 먹으면 행복하겠다. 근데 몸무게를 보면 다시 불행해지지 않을까?” 같은 말이 있다. 우리는 이 말속에 담긴 뜻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해하고 있다. 근데 생각해보면 우리는 어떻게 “행복”이라는 작대기 몇 개와 동그라미 몇 개로 이루어진 기호를 보고 행복이라는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고 있는 걸까? “책”처럼 추상화된 기호를 보고 책이라는 물체를 떠올리는 것도 충분히 신기한 일이다. 하물며 “행복”이라는 추상화된 기호를 보고 어떤 내면의 복합적인 느낌을 어떻게 떠올리는 것은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이러한 의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정서에 대한 개념과 지식, 즉 ‘정서 개념(emotion concept)’에 대한 질문이다. 정서 개념에 대한 전통적인 입장과 현대의 입장을 모두 알아보자.

비양상적 입장: 몸과 마음은 분리되어 있다.
전통적으로는 정서 개념이 단어로 구성되며 신체적 경험과 분리된 개념이라 보았다. 단어로 구성된다는 뜻은 “행복”이라는 단어가 “미소”, “맛있는 밥”, “평화로움” 같은 단어들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이를 전통적인 입장에서는 단어들로 사람들이 “행복”이라는 개념을 인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신체 경험과 분리된다는 뜻은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활동 자체가 우리에게 어떤 신체적 반응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물론 행복을 느낄 때는 하관의 얼굴 근육이 움직이면서 입꼬리가 올라가는 등 신체적인 경험을 겪는다. 하지만 신체적 경험을 통해서 만들어진 “행복”이라는 개념 자체는 정서 개념과 무관하다는 것이 전통적인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은 양상(modality: 감각의 특정한 형태)가 정서 개념에 무관하다는 의미에서 비양상적(amodal)이라고 한다. 이러한 견해에서는 정서 개념을 일반적인 개념과 동일시하여 생각한다. 예로 들어, “책상”이라는 개념이 “학교”, “공부”, “나무”등의 문자로 구성되듯 “행복”이 여러 문자로 구성되는 것이다. 이런 입장을 가지고 정서 개념에 접근한다면 정서 개념이 어떤 문자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하나의 연구가 될 수 있다. 간단한 예시로, “두려움”, “역겨움”, “증오”, “뿌듯”, “통쾌”, “홀가분” 등의 단어들이 얼마나 긍정적인지 혹은 부정적인 기준으로 정서를 분류할 수 있다. 긍정적인 정도를 알아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많은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긍정-부정 혹은 활성화-비활성화 같은 기준을 가지고 정서를 연구하는 것을 차원적 접근이라고 부른다.

또한 비양상적(amodal) 정서 개념에는 나의 저번 코스모스 기사인 “마음의 과학”에서 소개한 의미망 모형을 적용할 수 있다. 의미망 모형(semantic network model)이란 개념들 사이의 관계가 망의 형태로 존재하는 모델이다. 이 모델에서는 'A' 개념과 'B'개념이 이어져 있다면 'A'가 활성화될 때, 'B'도 같이 활성화된다. 예로 들어, 내가 '뿌듯'의 개념을 주로 학교에서 느껴서 '뿌듯'과 '학교'라는 두 개념이 서로 가깝게 이어져 있다고 하자. 그러면 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학교'라는 개념이 활성화되면 '뿌듯'이라는 개념도 같이 활성화되어, '뿌듯'과 관련된 기억과 단어가 더 많이 떠오른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여기까지 전통적인 비양상적(amodal) 정서 개념을 간단하게 소개해보았다. 여기서 현대 정서 개념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심리학과 인지과학의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알아보자.
체화된 인지 : 마음 = 뇌 + 몸 + 환경
인간에게는 외부세계와 직접 접촉하고 있는 몸과 그렇지 않은 정신이 있다. 몸과 마음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은 몸과 마음을 서로 다른 실체라고 설명한다. 이런 생각은 우리의 통념에도 어느 정도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몸은 피곤하지 않지만 정신이 피곤할 때가 있듯이 몸과 마음이 원하는 것이 서로 다를 때도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설명했던 비양상적 정서 개념도 이러한 이원론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두려움”을 느낄 때 수반되는 “땀”, “심장 박동”, “소름” 같은 경험들은 몸에서 일어나는 일로, “두려움”의 개념은 정신에서 일어나는 일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몸과 마음을 분리하는 것이 참 이상하기도 하다. 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나는 독립된 몸과 마음을 가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외부에서 나를 볼 때 나는 그저 하나의 개체이다. 또한, 우리의 몸은 우리의 마음에 의해 움직이고, 우리의 행동은 다시 마음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몸과 마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몸과 마음의 관계는 철학적으로도 접근할 수 있지만, 인지과학으로 불리는 심리학, 뇌 과학, 신경과학 등의 학문은 이러한 몸과 마음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인지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과거의 이원론적 관점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전통적인 이론들에 반발하며 체화된 마음(Embodied mind)이라는 일원론적 개념이 등장한다. 체화된 마음 이론에 따르면 뇌가 곧 마음은 아니며 마음은 뇌와 몸, 그리고 환경작용의 산물이다. 체화된 마음 이론이 정서 개념 연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Niedenthal의 실험을 통해 알아보자.
몸과 마음은 얼마나 연결되어 있을까?
우리가 행복을 느낄 때는 보통 웃으면서 하관의 얼굴 근육을 써서 입꼬리가 올라간다. 하지만 그 반대도 사실일까? Niedenthal 연구팀은 정서 개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정서에 관련된 얼굴 근육이 활성화되는지 연구하였다. 실험1과 실험2의 구조는 아래와 같다.

실험 참가자들은 A 그룹과 B 그룹으로 나뉘어 각각 다른 과제를 수행하였다. 과제 A의 경우 모니터에 나온 단어가 감정과 연관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키보드 버튼을 눌러서 분류했고 과제 B의 경우 모니터에 나오는 단어가 대문자로 시작하는지 아닌지를 키보드 버튼을 눌러 분류했다. 각각의 과제를 수행하면서 얼굴에 부착한 장비를 통해 얼굴의 근전도(Electromyography, EMG)를 측정하였다. 근전도 측정을 통해 얼굴의 어느 부위에 전기신호가 오는지, 즉 어느 부위가 미세하게 활성화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실험의 참가자들은 A그룹과 B그룹으로 나뉘어 각각 다른 조건에서 같은 과제를 수행했다. A 그룹은 입에 펜을 문 상태로 앞선 실험과 같이 모니터에 올라온 단어가 감정과 관련되어있는지 판단했다. B 그룹은 입에 펜을 물지 않은 상태로 같은 과제를 수행했다.

역시 흥미로운 결과가 도출되었다. 그래프를 보면 펜을 물었을 때 역겨움과 행복에 해당하는 단어들의 오답률이 많이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다. 왜 역겨움과 행복에서만 차이를 보일까? 실험1에서 알 수 있듯, 역겨움은 위입술올림근이라는 하관의 근육에 크게 관련이 있고 행복은 큰광대근이라는 하관의 근육에 크게 관련이 있다. 이는 실험1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실험에서도 도출되는 결론이다. 실험2에서 볼펜을 물면서 하관의 근육이 제한되자 행복과 역겨움에 해당하는 근육이 활성화되지 못하였고 따라서 감정과의 관련성을 판단하는 과제를 잘 수행하지 못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얼굴이 자유롭지 않으면 주어진 단어의 감정과 관련성을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즉, 신체가 정서개념의 판단에 영향을 준다.
감정에 관한 과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실컷 감정에 관한 과학적 기사를 다 쓰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감정이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알겠는데,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실 감정에 관한 연구 없이도 우리는 아무 문제 없이 감정을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감정에 관한 공부를 한다고 더 좋은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도 아니다. 또한, 감정은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감정 그 자체로 우리에게 충분히 많은 것을 나눠준다. 우리가 다양하고 새로운 감정을 느끼기 위해 많은 문학, 영화, 노래, 미술 등을 보는 것이 그 예시이다.
물론 감정에 관한 연구는 의료적 목적 등 실용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나는 연구 그 자체에서도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튜브에서 본 파인만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제겐 예술가 친구 한명이 있는데, ... 그가 말하기를 “예술가로서 나는 이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볼 수 있지만, 과학자인 자네는 이걸 분석해서 따분한 것으로 만들지 않나?” 저는 이 친구가 얼간이라고 생각해요. 우선, 그가 보는 아름다움은 다른 사람들과 나도 볼 수 있는 거예요. ... 또한 저는 그 친구보다 꽃에 대해 더 많은 걸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세포들의 복잡한 활동을 상상할 수 있지요. 거기에도 아름다움이 있어요. ... 과학 지식과 흥미로운 질문들은 꽃의 아름다움이란 미스터리와 짜릿함을 오직 더할 뿐입니다.“
감정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고 충분히 아름답지만, 그것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보고 그것이 나에게 어떻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알수록 더 신기하고 재밌는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것 같다. 이 기사를 통해 감정의 아름다움에 미스터리와 짜릿함이 더해졌길 바란다.
참고자료
[1] Niedenthal, Wood, Rycholowska. Embodied Emotion Concepts, 2014.
[2] Winkielman, Nidenthal, Oberman.The Embodied Emotional Mind, 2008.
[3] Cannon. The James-Lange Theory of Emotions: A Critical Examination and an Alternative Theory, 1927.
[4] Niedenthal, Winklelman, Vermeuten. Embodiment of Emotion Concepts, 2009.
첨부 이미지 출처
[1] Niedenthal, Winklelman, Vermeuten. Embodiment of Emotion Concepts,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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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유시오
발행호│2020년 여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