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 속 고양이가 살아있는 동시에 죽어있다고? 헛소리하지 마라!"
1935년,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비판하기 위해 이렇게 외쳤다. 그는 절반의 확률로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는 상자 속 고양이의 생사 여부를 확인해보기 전까지는, 이 고양이가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어있다고 주장하는 양자역학에 반박하고자 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본래 양자역학을 공격하고자 고안한 예시였지만, 오늘날 양자역학을 묘사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고실험이 되어버린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대한 설명이다.
양자역학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유튜브와 같은 여러 매체를 통해 이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대해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양자역학의 핵심 원리 중 하나인, 한 존재가 동시에 여러 개의 상태를 가질 수 있다는 ‘양자중첩’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다. 마치 고양이가 살아있는 동시에 죽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를 완전히 다르게, 그러나 훌륭히 설명해낸다는 것이 양자역학이 매혹적인 이유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매혹적인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양자컴퓨터’가, 이론적으로 현존하는 최고의 슈퍼 컴퓨터가 수백 년이 걸려도 풀기 힘든 문제를 단 몇 초만에 풀어낼 수 있다면 어떨 것 같은가?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된다면, 영화에서나 보던 매우 강력한 인공지능이나 VR, AR 뿐 아니라, 과장 조금 섞어서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그 어떤 SF 같은 기술도 현실이 될 가능성을 매우 높일 것이다. 마법도, 상상도 아닌, 과학의 힘으로 말이다.
양자컴퓨터의 상용화가 필요한 이유
양자컴퓨터란, 한마디로 양자역학적 원리를 적용하여 만들어진 컴퓨터를 의미한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고전적인 컴퓨터가 0 또는 1로 표현되는 비트를 사용하듯, 양자컴퓨터는 0과 1을 동시에 공존시킬 수 있는 큐비트(Q bit, Quantum bit의 줄임말)를 사용한다. 이렇게 기존 비트와 다르게 작동하는 큐비트의 원리 때문에, 양자컴퓨터의 성능은 일부 문제에 한해 슈퍼 컴퓨터의 계산 속도보다 수억 배는 빠를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되는 것은 양자컴퓨터는 한정적인 분야에서만 슈퍼 컴퓨터를 뛰어넘는 성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되기에, 양자컴퓨터가 슈퍼컴퓨터를 대체하기보다 상호보완적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양자컴퓨터 개발이 연산 속도 및 기술 향상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칠 것임은 분명하다.
양자컴퓨터와 같은 새로운 방식의 컴퓨터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 혁신적인 기능 향상의 이유만은 아니다. 고전적인 컴퓨터 성능 향상의 ‘물리적인 한계’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 역시 큰 이유이다. 컴퓨터의 기본 부품 중 하나인 트랜지스터는 “반도체에 집적하는 트랜지스터 수는 1~2년마다 2배로 증가할 것이다”라는 무어의 법칙처럼, 현재까지 점점 작아지고 있다. 컴퓨터 부품을 작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같은 공간에 더 많은 부품을 넣어서 더 빠르게 연산할 수 있도록,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함이다. 한 교실에 1명의 학생이 들어가 수학 문제를 푸는 것보다 10명의 학생이 들어가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 훨씬 빠른 것과 비슷한 이유이다.
2022년 상반기에 대만 소재 세계 최정상급 반도체 기업인 TSMC가 3nm 크기의 반도체 공정을 성공시킨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 현재는 컴퓨터 부품의 크기가 원자 크기에 근접할 정도가 되었다. 원자 중 가장 작은 수소 원자 하나의 크기가 0.05nm인 것을 감안했을 때, 이는 놀라울 정도로 작은 크기이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원자 크기보다 작은 크기로 작동하는 컴퓨터 부품은 존재할 수 없기에, 고전적 컴퓨터가 성능향상의 한계를 맞이하는 것은 생각보다 먼 미래가 아닐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이 수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빅데이터의 시대’에서, 기술 진보를 위해 데이터 처리 성능의 지속적인 향상은 필수불가결하기에 양자컴퓨터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양자컴퓨터가 매우 주목받고 있는 기술임은 ‘돈’의 움직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미국의 전략컨설팅 대기업인 맥킨지의 발표에 따르면 양자컴퓨터 기술이 미래의 IT 기술 뿐 아니라 화학, 의약품 시장에 불러올 잠재적 가치는 90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올해 2023년부터 2035년까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삼성전자, 현대차, SK텔레콤, LG전자 등 정부와 민간이 3조 5000억원 가량을 양자기술 분야에 투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양자컴퓨터의 상용화에 이렇게 많은 자본이 투입되고 있다는 것은 양자컴퓨터를 개발하는 사람이 전세계에 큰 영향력을 끼칠 것임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양자컴퓨터 상용화의 한계
양자컴퓨터라는 개념 자체는 1982년부터 제안되었을 정도로 꽤 오래된 만큼, 양자컴퓨터를 개발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19년 Google은 제한적인 영역에서 기존 슈퍼 컴퓨터를 훨씬 능가하는 성능을 보여준 53개의 큐비트로 만들어진 양자컴퓨터 ‘시커모어’를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 학술지 Nature를 통해 선보였다. 뿐만 아니라 2021년 IBM은 127개의 큐비트로 만들어진 양자 프로세서 ‘이글’을 발표하였다. 우리나라도 KAIST에서 20큐비트급의 양자컴퓨터를 개발했을 정도로 양자컴퓨터 구현 기술 자체는 다양하게, 오랫동안 연구되어 왔지만 양자컴퓨터를 바로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상용화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양자컴퓨터를 상용화하기 힘든 이유에는 크게 2가지가 있다.
우선, 현재의 기술로는 양자컴퓨터 연산 시 오류가 매우 잦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100~1000번 연산에 한번 꼴로 오류가 난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정도는 큐비트 수가 늘어날 수록, 즉 연산 속도가 높아질수록 함께 커지기 때문에 오류 보정은 양자컴퓨터 상용화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아직 완전히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2023년 4월 발표된 스웨덴 연구진이 연산의 오류를 압도적으로 낮춘 양자컴퓨터 ‘세흐림니르’ 개발에 성공하면서, 이 문제 해결에 매우 큰 기여를 했다. 연구진은 ‘Reference-state Error Mitigation’이라는 기술을 이용했는데, 이는 간단히 양자컴퓨터로 계산한 결과와 기존 컴퓨터로 계산한 결과를 비교하여 오류를 추정, 보정하는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두번째로는, 현재 가장 발전된 양자컴퓨터 구동 방식인 초전도체 기반 큐비트가 작동하기 위해 필수적인 극저온 환경이 너무 큰 전력 손실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광학, 이온 포획 등을 기반한 큐비트 구현도 가능하지만, Google과 IBM 및 여타 선진 양자컴퓨터 기술을 가진 기관이 초전도체와 같은 양자소자 기반 양자컴퓨터를 주로 연구하기에 이것이 가장 상용화에 가까운 기술이라 볼 수 있다. 한 예시로, [그림 2]에 보이는 Google의 양자컴퓨터 시커모어의 원통형의 복잡한 구조는 사실 15mK에 가까운 극저온 환경을 만들기 위한 매우 성능 좋은 냉장고이며, 실제 시커모어 칩은 수 cm에 불과하다. 이는 극저온 환경 구현에 많은 기술력이 사용되며, 이에 따른 가격 상승은 양자컴퓨터 상용화에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되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연산 오류의 문제는 그 해결의 실마리가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지만, 극저온 환경에서의 작동 문제는 여전히 해결하기 힘든 문제이다. 현재 개발 중인 상온 초전도체도 여전히 높은 압력과 같은 극한 조건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위상부도체, 양자컴퓨터에서의 반도체가 될 것인가?
양자컴퓨터 상용화의 큰 걸림돌 중 하나인 극저온 환경을 극복할 물질은 없는 것일까? 이에 최근 각광받고 있는 물질이 바로 ‘위상부도체’이다. 위상부도체란 이름 그래도 위상수학적인 부도체로, 원래 물질은 부도체지만 물질의 경계에서 특별한 위상수학적 조건을 만족하여, 그 경계에서만 전도성을 지니는 물질을 의미한다. 이 물질이 양자컴퓨터 상용화의 핵심 기술로 주목받기 시작한 이유는, 상온에서의 큐비트 구현을 이뤄낼 가능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상부도체는 상온에서 전기적 저항이 0에 수렴하도록 할 수 있다. 2019년 BreakThrough Prize를 수상한 C. L. Kane과 E. J. Mele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연구에 따라 전자의 스핀을 이용하여 상온에서도 겉표면의 전기적 저항이 0에 수렴하도록 할 수 있는 양자 소자인 위상부도체의 발견이 이루어지며, 상온 큐비트 구현의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전기적 저항을 상온에서 0에 가깝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큐비트는 양자중첩, 양자얽힘과 같은 양자적 원리를 기반으로 작동하는데, 이러한 양자적 특성은 간섭이 거의 없는 환경에서만 유지되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알려진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어떤 대상의 관측, 다른 말로는 다른 대상과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면 그 대상의 상태가 하나로 붕괴되어 더 이상 양자적 특성을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저항은 전자와 물질 간의 상호작용으로 생기기 때문에, 저항이 0에 수렴한다는 것은 전자 또는 여타 입자가 다른 물질과 상호작용하지 않고 양자적 특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온 위상부도체로 가장 대표적인 물질 중 하나는 Bismuth Selenide라는 소자이다. 이렇듯 상온 위상부도체는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물질이다. 만약 정말 상온 큐비트 구현에 위상부도체가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 검증된다면, 양자컴퓨터의 상용화에 매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를 작동시키기 위해서 ‘반도체’라는 물질이 있었듯이, 양자컴퓨터에서의 반도체는 ‘위상부도체’가 될 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위상부도체와 양자컴퓨터의 미래
양자컴퓨터는 상상만 하던 수많은 기술을 현실세계로 가져다 줄 수 있는 그야말로 ‘꿈의 기술’이다. 그만큼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이 연구하고 수많은 자본이 투입되었지만, 여전히 양자컴퓨터의 상용화는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겨울의 추위를 견뎌낸 나무에서는 새순이 돋듯, 꾸준한 연구는 결실을 맺기 마련이다. 인류는 위상부도체라는 소자를 찾아내어 양자컴퓨터 상용화의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고 있다. 이 물질이 양자컴퓨터를 우리의 곁으로 데려다 줄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지만, 양자컴퓨터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는 인류를 언제나처럼 답으로 이끌 것이라 확신한다. 영국의 위대한 우주 이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그가 죽기 전 마지막 강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So remember to look up at the stars, and not down at your feet.
Try to make sense of what you see, and wonder about what makes the universe exist.
BE CURIOUS.”
이상벽 학생기자 | Physics & Earth Science | 지식더하기
참고자료
[1] https://doi.org/10.1038/nphys1274
[2] https://doi.org/10.1021/acs.nanolett.8b05011
[3] https://youtu.be/A3b05Rgee9g
[4] Phalgun Lolur et al, “Reference-State Error Mitigation: A Strategy for High Accuracy Quantum Computation of Chemistry”, Journal of Chemical Theory and Computation, 2023 (DOI: 10.1021/acs.jctc.2c00807)
[5] https://en.wikipedia.org/wiki/Topological_insulator
첨부한 이미지 출처
[1] https://url.kr/brfq9d
[2] https://scitechdaily.com/quantum-algorithm-breakthrough/
[3] https://www.hqgraphene.com/Bi2Se3.ph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