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고 속 금속 덩어리가 1킬로그램에서 물러난 날
130년 동안 세상의 모든 저울은 파리 근교 금고 속 금속 원기 하나를 기준으로 삼았다. 2019년 그 기준이 물건에서 자연 상수로 바뀐 이유를 살펴본다.
편집부 · 2026년 10월 6일 · 읽는 데 4분
2019년 5월 20일부터 1킬로그램은 더 이상 특정한 물건의 무게가 아니다. 그전까지 1킬로그램의 정의는 프랑스 파리 근교 국제도량형국 금고에 보관된 백금-이리듐 원기둥 하나의 질량이었다. 이제는 자연의 기본 상수인 플랑크 상수의 값을 고정하고, 거기서 거꾸로 1킬로그램을 정한다. 단위의 기준이 사람이 만든 물건에서 우주 어디서나 같은 값으로 옮겨 간 것이다.
왜 물건 하나를 기준으로 삼았나
18세기 말 프랑스는 지역마다 제각각이던 단위를 하나로 통일하려 했다. 처음에는 물 1리터의 질량을 1킬로그램으로 삼았지만, 물의 온도와 순도에 따라 값이 흔들렸다. 그래서 정밀하게 만든 금속 덩어리를 기준으로 삼는 쪽을 택했다.
1889년 국제 회의에서 백금과 이리듐을 섞어 만든 원기둥이 국제 킬로그램 원기로 정해졌다. 높이와 지름이 약 4센티미터인 작은 덩어리다. 같은 재료로 만든 복제본들이 여러 나라에 나뉘어 각국의 기준이 되었고, 각국은 수십 년마다 복제본을 파리로 가져가 원기와 견주었다. 세상의 모든 저울은 결국 이 금고 속 덩어리에 연결되어 있었다.
원기의 무게가 변하면 어떻게 되나
문제는 원기를 복제본과 비교할 때마다 드러났다. 수십 년에 걸친 비교에서 원기와 복제본들 사이에 아주 작은 차이가 점점 벌어졌다. 차이는 50마이크로그램 안팎, 모래알 하나보다 가벼운 수준이었다. 표면에 오염 물질이 붙었는지, 세척 과정에서 조금씩 깎였는지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여기에는 묘한 논리가 숨어 있다. 원기는 정의상 언제나 정확히 1킬로그램이다. 원기가 가벼워졌다면, 그 순간 원기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물건이 무거워진 것으로 계산된다. 기준 자체가 흔들려도 그 흔들림을 잴 더 높은 기준이 없었다. 정밀한 과학 실험이 늘어나면서 이런 불확실성은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 구분 | 2019년 이전 | 2019년 이후 |
|---|---|---|
| 1킬로그램의 기준 | 금고 속 원기의 질량 | 플랑크 상수의 고정값 |
| 기준의 위치 | 파리 근교 한곳 | 어디서나 같음 |
| 변할 가능성 | 표면 오염 등으로 변할 수 있음 | 변하지 않음 |
| 기준을 재현하는 방법 | 원기와 직접 비교 | 정밀 실험으로 어디서든 재현 |
플랑크 상수로 어떻게 무게를 정하나
플랑크 상수는 빛과 원자 세계의 에너지가 얼마나 잘게 쪼개지는지를 나타내는 자연의 기본 상수다. 이 값은 우주 어디서나 같다고 여겨진다. 새 정의에서는 플랑크 상수에 정확한 값을 부여하고, 그 값과 맞아떨어지도록 1킬로그램을 정한다.
실제로 이 정의를 질량으로 옮기는 장치 가운데 하나가 키블 저울이다. 한쪽에서는 물체의 무게를, 다른 쪽에서는 전자석이 내는 힘을 비교해 균형을 맞춘다. 전기적인 양은 양자 현상을 이용해 매우 정밀하게 잴 수 있고, 그 측정이 플랑크 상수와 연결된다. 원리는 복잡하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물건 하나와 비교하는 대신, 자연 법칙으로 질량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새 정의는 기존 1킬로그램과 최대한 같은 값이 되도록 정해졌다. 부엌 저울이나 정육점 저울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 달라진 것은 가장 꼭대기에 놓인 기준의 성격이다.
다른 단위들은 어떻게 바뀌었나
같은 날 킬로그램만 바뀐 것은 아니다. 전류의 단위 암페어, 온도의 단위 켈빈, 물질의 양을 나타내는 몰도 각각 기본 상수를 고정하는 방식으로 다시 정의되었다. 길이의 단위 미터는 이미 1983년에 빛의 속도로 정의되어 있었고, 시간의 단위 초는 세슘 원자의 진동으로 정의되어 있었다. 2019년의 개정으로 국제단위계의 일곱 기본 단위가 모두 자연 상수에 기대게 되었다.
남은 과제
새 정의가 기준의 흔들림 문제를 풀었지만, 그 정의를 실제 질량으로 옮기는 장치는 여전히 매우 비싸고 다루기 어렵다. 키블 저울을 운영할 수 있는 곳은 세계적으로 많지 않다. 원리상으로는 어디서든 1킬로그램을 재현할 수 있게 되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소수의 기관이 기준을 만들어 나눠 주는 구조가 이어진다.
물러난 원기는 지금도 금고 안에 있다. 이제는 기준이 아니라, 새 정의가 옛 기준과 어긋나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역사적인 비교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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